●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3절)
전쟁이 끝났습니다. 그리고 5장이 시작됩니다. 4-5장은 같은 사건을 두 번 들려줍니다. 한 번은 사건으로, 다른 한 번은 노래로 전합니다. 이것은 출애굽기 14장이 홍해 사건을 이야기한 뒤 15장이 모세와 미리암의 노래로 다시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때도 여선지자가 노래를 이끌었고, 여기서도 여선지자가 노래를 이끕니다. 그때도 하나님이 물로 병거를 잠그셨고, 여기서도 그렇습니다. 드보라의 노래는 새로운 세대가 부르는 홍해의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래의 주제는 2-3절에서 반복됩니다. 2절 하 “여호와를 찬송하라”, 3절 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입니다. 승리했으니 승리를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승리를 주신 분을 노래합니다. 2절은 영솔자들이 앞장서고 백성이 즐거이 헌신했다고 하면서도 찬송은 여호와께 돌립니다. 사람이 헌신하였지만 승리는 결국 하나님께서 주셔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노래는 처음 부분에 하나님의 강림하심을 이야기합니다. 4절 “여호와여 주께서 세일에서부터 나오시고 에돔 들에서부터 진행하실 때에” 세일과 에돔은 출애굽 세대가 지나온 광야 길입니다. 이곳에서 하나님은 불과 구름기둥으로 백성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셨습니다. 드보라는 지금 시내 산의 하나님이 다시 진군해 오시는 것으로 이 전쟁을 봅니다. 기손 강가에서 벌어진 일은 새로운 사건이 아니라 언약의 하나님이 하시던 일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이 오시자 땅이 진동합니다. 진동이라는 말이 두 절 안에 3번이나 반복됩니다. 산들이 흔들리고 시내 산조차 흔들립니다. 이것은 피조물이 창조주의 영광을 감당하지 못해 떨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너무 가볍게 부르고 쉽게 다루는 데 익숙해졌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보여 주는 하나님은 그 앞에서 산이 떨리는 분입니다.
그리고 4절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하늘이 물을 내리고 구름도 물을 내렸나이다” 4장에서 전쟁 승리의 이유를 여기서 말해 줍니다. 시스라는 철 병거를 끌고 기손 강가로 갔습니다. 그 땅이 말라 있음을 확인하지 않고서는 병거를 몰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비를 내리셨습니다. 마른 평지가 진창이 되었고, 구백 대의 병거는 무력하게 되었습니다. 21절이 그래서 기손 강이 그들을 표류시켰다고 노래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새 무기를 쥐여 주신 것이 아니라 하늘의 구름을 움직이셨습니다.
6절부터는 승리 이전의 형편을 설명합니다. “아낫의 아들 삼갈의 날에 또는 야엘의 날에는 대로가 비었고 길의 행인들은 오솔길로 다녔도다” 큰길이 비었다는 것은 상인이 다니지 못하고 소식이 끊겼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몸을 숨기며 좁은 길로 돌아다녔습니다. 나라의 혈관이 막힌 상태입니다. 7절은 마을 사람들이 그쳤다고, 그래서 지킬 사람도 이끌 사람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드보라가 일어나 “이스라엘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이 말은 성경에서 좀처럼 쓰이지 않는 칭호입니다. 사사기가 사사를 부르는 말은 대개 구원자이거나 재판자인데, 이 노래는 어머니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드보라가 무너진 집을 다시 일으키고 보호자의 역할을 합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왜 이런 상태가 되었을까요? 8절 “무리가 새 신들을 택하였으므로 그 때에 전쟁이 성문에 이르렀으나” 지금까지 함께 하신 하나님을 외면하고 새로운 신들을 택하였기 때문입니다. 우상은 늘 새 얼굴로 옵니다. 오래된 것은 식상해지고,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섭니다. 관광지의 점집 거리든 손안의 사주 앱이든, 모양은 바뀌어도 같습니다. 재미로 한번 보는 것이라 여기지만, 성경은 그것이 새 신을 택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8절은 이렇게 묻습니다. “이스라엘의 사만 명 중에 방패와 창이 보였던가” 사만 명에게 방패도 창도 없었습니다. 앞 장의 철 병거 구백 대와 나란히 놓고 보면 그 격차가 선명합니다. 삼갈이 소 모는 막대기를 들고 야엘이 장막 말뚝을 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을 버린 백성의 손은 비어 갑니다. 새 신을 택한 대가는 성문까지 밀려온 전쟁이었습니다.
● “스불론은 죽음을 무릅쓰고 목숨을 아끼지 아니한 백성이요”(18절)
9절에서 노래는 다시 사람들에게로 돌아옵니다. 방백들이 백성 중에서 즐거이 헌신했습니다. 강제로 끌려 나온 것이 아니라 스스로 드린 것입니다. 10절은 흰 나귀 탄 자와 양탄자에 앉은 자와 길에 행하는 자를 나란히 부릅니다. 지배층과 상인과 평범한 백성, 곧 모두를 부르는 것입니다.
그들이 전할 내용은 11절에 있습니다. “여호와의 공의로우신 일을 전하라” 여기 쓰인 말은 하나님이 행하신 의로운 일들이라는 복수형입니다. 전쟁에 나간 것도 사람이고 이긴 것도 사람인데, 노래는 드러내고 찬양할 내용은 오직 하나님의 일하심이라고 강조합니다. 일이 잘되고 나면 내가 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사람에게는 있습니다. 하지만 성도는 “내가 해냈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12절에서 “깰지어다”가 네 번이나 반복됩니다. 시가 이렇게 같은 말을 반복할 때는 다급함을 담습니다. 자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드보라를 깨우고 바락을 일으켜 세우는 이 외침이 곧이어 지파들의 이름을 부르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14절부터 명단이 나옵니다. 에브라임과 베냐민이 내려왔고, 므낫세를 가리키는 마길에서 명령하는 자들이 내려왔으며, 스불론에서 장군의 지팡이를 잡은 자들이 내려왔습니다. 15절에서 잇사갈의 방백들이 드보라와 함께했고 바락을 따라 골짜기로 달려 내려갔습니다. 18절은 그중에서도 두 지파를 따로 세웁니다. “스불론은 죽음을 무릅쓰고 목숨을 아끼지 아니한 백성이요 납달리도 들의 높은 곳에서 그러하도다.”
그런데 노래는 오지 않은 지파들도 이야기합니다. 15절 끝과 16절 끝이 같은 말로 두 번 마무리되는데, “르우벤 시냇가에서 큰 결심이 있었도다”입니다. 여기 큰 결심은 “심각하게 고민에 빠졌다 혹은 끝도 없이 토론을 벌인다”는 뜻입니다. 고민만하고 말만하다가 참여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 구절은 칭찬이 아니라 조롱입니다.
16절은 그들이 무엇을 듣고 있었는지도 알려 줍니다. 양의 우리 가운데 앉아 목자의 피리 부는 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르우벤은 가축이 심히 많았기에 요단 동편 땅을 구했던 지파입니다. 17절도 마찬가지입니다. 길르앗은 요단 강 저쪽에 머물렀고 단은 배에 머물렀으며 아셀은 해변에 앉아 항만에 거주했습니다. 가진 것이 있으니 굳이 나설 이유가 없었습니다. 잃을 것이 없는 이들이 목숨을 걸었고, 잃을 것이 있는 이들이 자리를 지켰습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그분만 붙들어야 합니다. 그분이 임하시면 산이 진동하고, 때를 따라 하늘의 구름이 움직입니다. 그 크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위해 일하십니다. 그런 분을 두고 새 신을 기웃거리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함께 서십시오. 드보라의 노래는 전쟁에 참여한 지파와 앉아 있던 지파를 나란히 기록했습니다. 시냇가에서 재고 따지는 사이에 전쟁은 다른 이들의 손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매일 말씀을 묵상하는 일도, 소그룹에서 함께 나누는 일도 그렇습니다. 마음을 모아 함께 할 때 하나님은 그 공동체를 통해 일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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