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2절)
기드온은 미디안과의 전쟁을 위해 군대를 소집하고, 두 번의 양털 표적을 통해 하나님 약속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시작됩니다. 본문 1절은 기드온을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으로 소개합니다. 바알과 다툰 자라는 뜻입니다. 이 이름으로 기드온을 소개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현재 위기가 무엇 때문이며, 승리를 위해 어떤 신앙을 가져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미디안과의 전쟁에 앞서 바알과의 전쟁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진을 친 곳은 하롯 샘 곁이었습니다. 하롯이라는 이름은 떤다는 의미입니다. 3절에서 하나님이 돌려보내라고 하신 “두려워 떠는 자”가 하롯과 같은 의미입니다. 떨림이라는 이름의 샘 곁에서, 이스라엘 군대는 떨고 있었고, 그런 자들은 돌려보냅니다. 샘 이름이 이스라엘의 현주소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2절에서 하나님이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지 아니하리니” 군대가 너무 많아서 승리를 줄 수 없다고 하십니다. 지금 군대 숫자를 보면, 기드온이 모은 군대는 3절을 보면 3만 2000명입니다. 미디안 군대는 12절에서 메뚜기의 많은 수와 같다고 했고, 8장에 가면 13만 5000명이었다고 나옵니다. 네 배가 넘습니다. 사람의 눈으로는 이미 절망적인 숫자인데, 하나님은 그것도 많다고 하십니다.
그 이유를 2절이 말씀합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3만2000으로 13만5000을 이겼다 해도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 될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 백성은 자기가 해냈다고 말할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마음이 그만큼 깊었습니다. 이것이 모든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군대의 숫자를 줄이십니다. 3절, 두려워 떠는 자는 돌아가게 하십니다. 그러자 이만 이천 명이 돌아가고 만 명이 남았습니다. 소집된 군대에서 셋 중 둘이 발길을 돌린 것입니다. 그만큼 두려웠다는 뜻이고, 하나님이 도우시지 않으면 이스라엘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는 뜻입니다. 남은 만 명의 마음은 어땠겠습니까. 삼만 이천으로도 떨었는데 이제 만 명입니다. 담대해진 것이 아니라 더 두려워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기서 멈추지 않으십니다. 4절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 가로 내려가라” 만 명도 많다는 것입니다. 기드온으로서는 한 사람도 놓치고 싶지 않은 상황인데 하나님은 더 줄이십니다. 물가에서 사람들이 두 모습으로 나뉩니다. 6절을 그대로 읽으면 이렇습니다.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은 자가 삼백 명이고,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7절에서 하나님은 그 삼백 명으로 미디안을 넘겨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흔히 묻는 것이 있습니다. 왜 그렇게 마신 사람 300명을 고르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그 이유를 한 줄도 말하지 않습니다. 더 경계하는 자세였다거나 더 훈련된 사람이었다는 설명이 어디에도 없습니다. 앞뒤 흐름을 보면 하나님의 관심은 태도가 아니라 숫자입니다. 하나님은 계속 “많다”고만 하셨습니다. 만일 무릎을 꿇고 마신 사람이 삼백 명이었다면 그 삼백 명을 고르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들을 삼백 용사라고 부르는 데 익숙하지만, 본문은 이들이 용사였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수를 줄이시려고 고르신 소수일 뿐입니다. 승리가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하시려는 겁니다.
● “네 손이 강하여져서”(11절)
8절에서 남은 백성을 돌려보내고 삼백 명만 남습니다. 미디안 진영은 그 아래 골짜기에 있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그 골짜기가 메뚜기 떼로 덮여 있었습니다. 성경은 이때 기드온의 심정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삼만 이천이 있을 때에도 양털을 두 번이나 놓고 확인하던 사람입니다. 그 사람 곁에 이제 삼백 명이 남았습니다. 두렵고 복잡합니다.
하나님이 그 마음을 아셨습니다. 9절에서 “그 밤에” 다시 찾아오셔서 일어나 진영으로 내려가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10절에서 이렇게 덧붙이십니다.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와 함께 그 진영으로 내려가서” 두려워할 것을 미리 아시고 동행할 사람까지 허락하십니다. 11절이 그 목적을 말합니다.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내려가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을 꾸짖어 몰아세우지 않으시고, 손이 강해질 수 있는 자리로 데려가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도 두려움으로 머뭇거리는 기드온에게 적들의 이야기를 듣게 하셔서 확신을 주십니다.
12절에서 기드온이 본 것은 메뚜기 떼 같은 군대와 해변의 모래 같은 낙타였습니다. 그런데 13절에서 한 병사가 친구에게 꿈 이야기를 합니다.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 들어와 장막을 쳐서 무너뜨리고 위쪽으로 엎었다는 것입니다. 이 꿈에 쓰인 두 가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보리는 값싼 곡식이고 농사짓는 사람들의 양식입니다. 장막은 미디안 같은 유목민의 거처입니다. 앞에서 미디안은 몰려와 이스라엘 땅의 소산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짓밟히던 농부들의 떡 한 덩어리가 굴러와 약탈자의 장막을 엎는 꿈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 갚으시고 구원하십니다.
14절에서는 다른 친구가 그 꿈을 풀이합니다.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그의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나님이 넘겨주셨다는 말이 이스라엘 사람의 입이 아니라 대적의 입에서 나옵니다. 기드온이 하나님께 두 번이나 표적을 구하며 확인하려던 그 말을, 미디안 병사가 먼저 하고 있습니다.
기드온이 거기서 확인한 것이 있습니다. 자기가 저들을 두려워하는 것보다 저들이 자기를 더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 두려움을 누가 그들 안에 심어 놓으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적진 안에서 일하고 계셨습니다. 기드온이 내려가기 전에 전쟁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님의 약속보다 내 상황을 더 크게 볼 때가 있습니다. 기드온은 사람의 숫자가 줄어들 때마다 불안해졌습니다. 우리도 눈에 보이는 형편을 바라 보다가 이미 받은 약속을 놓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계산이나 상식과 다른 방식으로 일하십니다. 삼백 명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알면서도 머뭇거리는 자리에 오래 머물지 않아야 합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이 넘겨주셨다고 하셨는데도 계속 확인하고 망설였습니다. 하나님이 참으시고 단계마다 이끌어 주셨기에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인도받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제는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붙들고 한 걸음 내디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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