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8:1-21절 / 승리 이후(26.09.17)

2026.09.17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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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함께하심으로 기드온은 300명과 함께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승리 이후 다툼이 벌어집니다. 1절에서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따집니다.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이 어찌 됨이냐” 그리고 크게 다투었다고 합니다. 자칫 폭력으로 이어질 상황이었습니다.

이렇게 따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에브라임은 북쪽 지파들 가운데 가장 큰 지파입니다. 그런데 전쟁에 부르지 않은 것이 불만입니다. 전쟁에서는 세운 공에 따라 전리품을 나누어 가집니다. 그런데 뒤늦게 불려 와 도망가는 병사들 막고 적장만 죽였습니다. 공도 세우지 못했고 전리품도 많지 않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익을 위한 싸움입니다. 이 다툼이 사사기에서 지파들끼리 갈등하는 첫 사건입니다. 그리고 에브라임 지파는 앞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도 계속 갈등을 유발하는 지파도 등장합니다. 아직 남과 북이 갈라지기 전인데 서서히 금이 가고 있습니다.

기드온의 대답이 2절입니다. “내가 이제 행한 일이 어찌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아비에셀은 기드온 자신의 집안입니다. 자기가 한 일은 맏물 포도이고 에브라임이 한 일은 끝물 포도인데, 그 끝물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3절에서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넘겨주셨다고 하며 공을 그들에게 돌립니다. 그러자 그들의 노여움이 풀렸습니다.

기드온의 대답이 지혜롭습니다. 자기를 낮추어 싸움을 막았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기드온은 괜찮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내용은 기드온의 전혀 다른 면을 보여줍니다.

4절에서 기드온과 삼백 명이 요단을 건넙니다. 피곤한 몸으로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추격하는 중입니다. 아직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닙니다. 5절에서 숙곳 사람들에게 떡덩이를 청합니다. 굶주린 동족의 요청입니다. 그런데 6절에서 숙곳의 방백들이 거절합니다.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네 손 안에 있다는 거냐 어찌 우리가 네 군대에게 떡을 주겠느냐” 이 대답에는 숙곳 사람들의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아직 미디안 왕들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기드온이 완전히 승리한 것이 아닙니다. 만일 기드온이 실패하고 미디안이 다시 이전과 같이 지배한다면, 기드온에게 떡을 준 성읍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들은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자신들을 압제했던 적을 물리치러가는 병사들에게 떡을 내주지 않는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의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기드온의 반응이 더 문제입니다. 7절입니다. “그러면 여호와께서 세바와 살문나를 내 손에 넘겨 주신 후에 내가 들가시와 찔레로 너희 살을 찢으리라” 8절에서 브누엘 사람들도 숙곳 사람들과 같은 대답을 하자 9절에서 그 망대를 헐겠다고 합니다. 난폭한 권력자처럼 행세합니다. 그리고 에브라임을 대했던 태도와 숙곳과 브누엘을 대하는 태도가 다릅니다. 에브라임 앞에서는 자기를 낮추었고, 숙곳과 브누엘 앞에서는 살을 찢겠다고 합니다. 에브라임은 큰 지파이고 숙곳과 브누엘은 작은 성읍입니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기드온은 강한 자 앞에서는 약하고, 약한 자 앞에서는 강한 모습입니다.

●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고”(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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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절, 갈골에 세바와 살문나가 만 오천 명과 함께 있습니다. 칼을 든 자 십이만 명은 이미 쓰러졌습니다. 11절에서 기드온이 큰길로 가지 않고 장막에 거주하는 자들의 길로 돌아 올라갑니다. 적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입니다. 그들이 안심하고 있을 때 진영을 칩니다. 12절에서 두 왕이 도망하지만 추격하여 사로잡고 온 진영을 무너뜨립니다.

완전한 승리를 얻었습니다. 이제 돌아가면 됩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그냥 돌아가지 않습니다. 14절에서 숙곳 사람 중 한 소년을 붙잡아 심문합니다. 그 성읍의 방백들과 장로들 77명의 이름을 받아 냅니다. 소년을 붙들어 이름을 받아 낸다는 것은 한 사람도 빠뜨리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15절에서 기드온이 그 사람들 앞에 섭니다. “너희가 전에 나를 희롱하여 이르기를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네 손 안에 있다는 거냐” 하며 두 왕을 내보입니다. 그리고 16절에서 성읍의 장로들을 들가시와 찔레로 징벌합니다. 그 성읍을 대표하는 어른들이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당했습니다. 17절은 더 놀랍습니다. 브누엘 망대를 헐고 그 성읍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미디안이 아닙니다. 같은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사사는 하나님이 백성을 건지시려고 세우신 자리인데, 그 손으로 자기 백성을 죽입니다. 하나님께 맡가지 않고 보복하고 원수를 갚습니다. 손에 힘이 주어지자 잘못 사용하고 있습니다.

18절에서 기드온이 두 왕에게 묻습니다. 다볼에서 죽인 자들이 어떠한 자들이더냐. 그들이 대답합니다. 하나같이 왕자들의 모습과 같더라. 19절에서 기드온이 그들이 자기 형제요 어머니의 아들들이라고 밝힙니다. 이 내용은 기드온이 세바와 살문나를 끝까지 추격해서 잡은 이유가 마치 자신의 형제들을 죽인 일에 대해 원수를 갚기 위한 것으로 보이게 합니다.

그리고 18절에 나오는 왕자라는 말이 마음에 걸립니다. 이스라엘에는 아직 왕이 없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의 형제들이 왕자 같았다고 합니다. 바로 내일 본문을 보면 백성들이 기드온에게 왕이 되어 달라고 청하게 됩니다. 기드온은 왕이 되지는 않았지만 왕처럼 살아갑니다.

20절에서 기드온이 맏아들 여델에게 그들을 죽이라고 시킵니다. 그러나 소년이 칼을 빼지 못합니다. 아직 어려서 두려웠습니다. 그 시대에 장수는 누구의 손에 죽느냐가 곧 명예였습니다. 소년의 손에 죽는 것은 수치였습니다. 기드온은 두 왕에게 마지막까지 모욕을 주려고 했고, 한편으로는 자신의 자리를 맏아들에게 주려고 한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사사의 자리는 물려주는 자리가 아닌데 그렇게 했습니다. 계속해서 기드온이 왕은 아니지만 왕처럼 점점 행동하고 있음이 드러납니다.

21절에서 세바와 살문나가 말합니다. “네가 일어나 우리를 치라 사람이 어떠하면 그의 힘도 그러하니라” 그 사람됨이 곧 그 힘이라는 말입니다. 대적의 입에서 나온 말인데, 이 장을 읽고 나면 그 말이 기드온에게 그대로 돌아옵니다. 기드온이 그들을 죽이고 낙타 목에 있던 초승달 장식들을 떼어 가집니다. 본문이 굳이 이 장신구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 둔 까닭이 있습니다. 조금 뒤에 기드온은 이런 노략물을 모아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고,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섬기게 됩니다. 오늘 그의 손에 들린 이 장식이 그 일의 시작입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승리가 사람을 지켜 주지는 않습니다. 기드온은 두려움에 떨던 사람이었고, 하나님이 붙들어 주셔서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힘이 손에 들어오자 그 힘으로 원한을 갚았습니다. 약할 때 드러나지 않던 것이 강해지자 드러난 것입니다. 우리가 구할 것은 형편이 좋아지는 것만이 아닙니다. 형편이 좋아져도 변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자리에서도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기드온은 승리 이전에도 표적을 구하며 말씀 위에 서지 못했고, 승리 이후에도 말씀이 아니라 자기감정을 따라 움직였습니다. 힘들 때나 잘될 때나 우리를 붙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 위에 서 있는 사람이라야 무너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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