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8:22-35절 / 하나님을 기억하지 아니하며(26.09.18)

2026.09.18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23절)

기드온은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까지 사로잡고 전쟁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런데 승리 이후 원한을 갚고 왕처럼 행세하는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오늘 본문은 기드온의 속마음이 무엇이었는지를 더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22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드온에게 이렇게 청합니다.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 한 절 안에 ‘당신’이라는 말이 3번이나 반복됩니다.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하나님이 구원하셨다고 말하지 않고 기드온이 구원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가장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기드온입니다. 두려워하던 그를 하나님이 부르셨고, 의심할 때마다 표적을 보여 주셨고, 300명으로 13만 5000명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기드온이 앞장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이 기드온의 말과 행동을 보고 이 전쟁은 하나님이 아니라 기드온이 한 것이라고 여기게 된 것입니다. 신앙이 무너지고 말씀에서 멀어지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사람을 의지하게 됩니다.

기드온은 대답합니다.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옳은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여기까지만 기록되었다면 기드온의 마무리가 참 좋았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24절부터 성경은 그가 겉으로 한 말과 속마음이 달랐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24절에서 기드온이 백성들에게 요청을 하나 합니다. “너희는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내게 줄지니라” 25절에서 무리가 즐거이 드리겠다고 대답하고 겉옷을 펴서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그 가운데 던집니다. 지도자가 요구하고 백성이 그대로 바치는 모습입니다. 왕이 되지 않겠다고 말한 사람이 왕처럼 요구하고 있고 백성들은 그대로 바치고 있습니다.

기드온이 요청한 금 귀고리의 무게가 금 1700세겔이었습니다. 오늘날 무게로 약 20kg입니다. 그런데 기드온이 받은 것이 금만이 아닙니다. 26절은 그 외에 초승달 장식들과 패물과 미디안 왕들이 입었던 자색 의복과 낙타 목에 둘렀던 사슬이 있었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자색 옷은 왕이 입는 옷입니다. 초승달 장식과 사슬은 왕이 타던 낙타를 꾸미던 것입니다. 어제 본문 21절에서 기드온은 두 왕을 죽이고 그 낙타 목의 초승달 장식을 떼어 가졌습니다. 왕의 물건이 전부 기드온의 손에 들어왔습니다.

27절이 진짜 문제입니다. 기드온은 백성들이 바친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에봇은 대제사장이 하나님 앞에서 섬길 때 입는 옷입니다. 본래 여러 색실로 짜서 몸에 걸치는 옷인데 기드온은 금으로 만들었습니다. 입고 활동하기 위한 옷이 아니라 세워 두고 바라보며 섬기기 위한 상징을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 성읍 오브라에 두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섬겼고,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기드온은 왜 하필 에봇을 만들었을까요? 에봇은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뜻을 묻는 자리에서 입던 옷입니다. 기드온은 왕의 자리는 사양했지만 하나님의 뜻을 묻고 전하는 자리, 곧 신앙 공동체의 주도권은 자기 손에 두려고 한 것입니다. 에봇은 사람이 마음대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닌데 기드온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기드온은 표적을 한두 번 본 사람이 아닙니다. 양털 표적을 두 번이나 보았고, 적진에서 꿈 이야기를 들었고, 300명으로 이기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면 그의 믿음이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어야 합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보이지 않아도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데로 나아가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표적이 우리 믿음을 자라게 하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는 것이 믿음입니다.

● “기드온이 사는 사십 년 동안 그 땅이 평온하였더라”(28절)

28절에서 미디안은 이스라엘 자손 앞에 복종하여 다시는 그 머리를 들지 못했고, 기드온이 사는 40년 동안 그 땅이 평온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평온입니다. 29절에서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은 돌아가 자기 집에 거주합니다.

그런데 30절이 그의 집을 이렇게 전합니다. 기드온은 아내가 많았고 그의 몸에서 낳은 아들이 70명이었습니다. 아들만 70명이니 아내가 스무 명이 넘었을 것입니다. 많은 아내를 두는 것은 그 시대 왕들의 모습입니다. 31절에는 세겜에 있는 첩이 낳은 아들이 나옵니다. 기드온은 그 아들의 이름을 아비멜렉이라 지었는데, “나의 아버지는 왕이다”라는 뜻입니다. 왕이 되지 않겠다고 말한 사람이 아들의 이름으로 자기가 왕임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이 아들 때문에 뒤에 큰 문제가 생깁니다. 32절에서 기드온이 나이가 많아 죽고 그의 아버지 요아스의 묘실에 장사됩니다. 사사기에서 사사의 죽음을 전하며 묘실에 장사되었다고 기록한 것은 기드온이 처음입니다. 기드온은 왕이 아니었지만 왕처럼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33절에서 기드온이 죽자마자 이스라엘 자손이 돌이켜 바알들을 따라가 음행하였고 바알브릿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았습니다. 브릿은 언약이라는 뜻입니다. 언약의 바알, 곧 언약을 지켜 주는 신으로 바알을 섬겼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 언약의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과 언약을 맺은 것입니다. 사실 기드온이 살아 있을 때에도 이들이 섬긴 것은 에봇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했지만 자기들이 만든 것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기드온이 죽자 순식간에 바알에게로 돌아섰습니다.

34절이 이스라엘의 근본 문제를 말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주위의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 자기들을 건져내신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을 기억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을 찾아왔을 때에도 하나님이 먼저 하신 말씀이 애굽에서 건져 내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니 사사기의 악순환이 계속 되풀이됩니다. 35절은 한 가지를 더합니다. 이스라엘은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이 베푼 모든 은혜를 따라 그의 집을 후대하지도 않았습니다. 기드온이 잘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압제받던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서 건져 낸 사람인데 그 은혜조차 잊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잊고 사람의 은혜도 잊었습니다. 그래서 이 백성은 같은 잘못을 계속 되풀이했습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우리가 왕이 되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드온은 입으로는 하나님이 다스리신다고 말하면서 손으로는 왕의 물건을 모으고 왕처럼 살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나의 왕이시라고 고백하면서 실제로는 내가 왕인 것처럼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말과 삶이 다르면 그것이 우리와 우리 집에 올무가 됩니다. 입술의 고백대로 하나님만 왕으로 섬깁시다.

또한 받은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구원의 은혜를 잊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을 붙들었고 같은 잘못을 되풀이했습니다. 우리도 구원받은 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길 때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어떻게 구원하셨는지를 기억하면 오늘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이 나옵니다. 그 은혜를 날마다 기억하고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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