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와 같이 행하라”(48절)
사사기 9장 전체는 기드온의 아들인 아비멜렉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좋은 내용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사사도 아닌 아비멜렉 이야기를 길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그 자리에 머물지 않고 점점 더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왕이 될 자격이 없는 아비멜렉이 왕이 되고자 세겜 사람들을 선동했고, 세겜 사람들이 그를 왕으로 세운 것도 그들 역시 욕망이 눈을 가렸기 때문입니다. 그 관계가 3년 만에 깨졌습니다. 어제 본문에서 아비멜렉은 자기를 배반한 세겜을 점령하고 소금을 뿌렸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다음에 그가 세겜 사람들을 어떻게 죽였는지를 자세히 기록합니다.
46절에서 세겜 망대의 모든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엘브릿 신전의 보루로 들어갑니다. 엘브릿은 언약의 신이라는 뜻입니다. 8:33절에서 기드온이 죽자 이스라엘이 바알브릿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았다고 했습니다. 엘브릿은 바알브릿과 같은 의미입니다. 하나님과 맺어야 할 언약을 바알과 맺은 것입니다. 위기가 오자 이들은 그 신전으로 들어갔습니다. 보루는 신전 안의 은밀한 방, 지하실 같은 곳으로 보입니다. 자기들이 섬기는 신이 지켜 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이 아비멜렉에게 알려집니다. 그러자 아비멜렉은 백성과 함께 살몬 산에 올라 손에 도끼를 들고 나뭇가지를 찍어 자기 어깨에 멥니다. 그리고 함께 있는 백성에게 말합니다. 48절 “너희는 내가 행하는 것을 보나니 빨리 나와 같이 행하라” 나를 보고 나를 따라 하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익숙합니다. 7:17절에서 기드온이 선발된 군사 300명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나만 보고 내가 하는 대로 하되” 그때 기드온의 손에는 항아리 속에 감춘 횃불이 있었습니다. 불로 미디안을 물리쳤습니다. 이제 그 아들이 같은 말을 하며 불을 듭니다. 그런데 그 불은 적군이 아닌 자기 동족 세겜 사람들을 태웁니다. 아비멜렉은 스스로 높아지려 했던 기드온을 닮았습니다.
모든 백성이 각각 나뭇가지를 찍어 아비멜렉을 따라 보루 위에 얹고 불을 놓습니다. 세겜 망대에 있던 남녀가 약 1000명이 죽었습니다. 참담한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기드온은 왕이 되지 않겠다고 하면서 왕처럼 살았고, 그 모습을 본 아들은 왕이 되고 싶어 했습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사람이 왕이 되어 다스리는 세상의 모습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런데 아비멜렉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50절에서 그는 데베스에 가서 진을 치고 그 성을 점령합니다. 데베스 사람들은 성읍 안의 견고한 망대로 도망하여 문을 잠그고 망대 꼭대기로 올라갑니다. 세겜 망대의 사람들이 불에 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이들도 살기 위해 가장 높은 곳으로 피한 것입니다.
52절에서 아비멜렉이 망대 앞에 이르러 공격하며 망대의 문에 가까이 나아가 불사르려 합니다. 세겜 망대에서처럼 이번에도 불로 사람들을 죽이려 한 것입니다. 그런데 위에서 사람들이 무엇이든 던질 수 있는 망대 밑으로 다가가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입니다. 싸움을 많이 해 본 아비멜렉이 이것을 몰랐을 리 없습니다. 그런데 복수와 권력에 눈이 멀면 다른 사람은 다 보는 것을 자기만 보지 못합니다. 스스로 위험의 길, 죽음의 길로 걸어 들어갑니다.
이야기의 흐름 상 데베스 백성들도 세겜처럼 불에 타서 죽었다는 이야기로 이어질 것 같은데 53절에서 갑자기 흐름이 달라집니다. 한 여인이 맷돌 위짝을 아비멜렉의 머리 위에 내려 던져 그의 두개골을 깨뜨립니다. 망대 위에서 떨어진 돌 하나가 정확히 그의 머리에 맞았습니다. 당시 맷돌은 지금 우리 맷돌과는 다르다고 합니다. 납작한 아래 판에 곡식을 놓고 방망이처럼 생긴 맷돌 위짝을 굴려서 빻았다고 합니다. 그 맷돌위짝이 아비멜렉의 머리로 정확하게 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아비멜렉은 바로 죽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의 무기를 든 청년을 급히 불러 칼을 빼어 자기를 죽이라고 합니다. 이유가 이렇습니다. 54절 “사람들이 나를 가리켜 이르기를 여자가 그를 죽였다 할까 하노라” 그 시대에 싸우는 사람에게 여자의 손에 죽는 것은 큰 수치였습니다. 청년이 그를 찔러 아비멜렉은 죽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치명상을 입힌 사람은 이름 없는 한 여인입니다. 55절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비멜렉이 죽은 것을 보고 각각 자기 처소로 흩어졌습니다. 왕처럼 굴던 사람이 죽자 그를 따르던 무리도 그렇게 흩어졌습니다.
● “하나님이 이같이 갚으셨고”(56절)
겉으로 보면 이 모든 일은 한 사람의 권력욕에서 시작되었고, 그가 눈이 멀어 망대 밑으로 갔다가 우연히 떨어진 돌에 맞아 죽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56절이 결론을 말합니다. “아비멜렉이 그의 형제 칠십 명을 죽여 자기 아버지에게 행한 악행을 하나님이 이같이 갚으셨고”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욕심 때문에 형제 70명을 한꺼번에 죽인 일을 하나님이 다 보고 계셨고, 그대로 갚으신 것입니다.
57절은 세겜 사람들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세겜 사람들의 모든 악행을 하나님이 그들의 머리에 갚으셨습니다. 56절과 57절이 똑같이 반복하는 말이 “악행을 하나님께서 갚으심”입니다. 아비멜렉의 악행을 하나님이 갚으셨고, 세겜 사람들의 악행도 하나님이 갚으셨습니다.
9장을 읽는 동안 하나님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세상은 좋을 때는 서로 가까웠다가 누군가 이간질하면 갈라서고, 서로 배신하고 물고 뜯습니다. 세상에서 흔히 보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그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모든 악행을 보고 계셨고 그대로 갚으셨습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는 사람은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처럼 살게 되고, 그런 공동체는 서로 물고 뜯다가 함께 무너집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 나와 가정과 공동체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57절은 “여룹바알의 아들 요담의 저주가 그들에게 응하니라”고 끝이 납니다. 9:20절에서 70명 가운데 홀로 살아남은 요담은 아비멜렉에게서 불이 나와 세겜 사람들을 사를 것이요, 세겜 사람들에게서도 불이 나와 아비멜렉을 사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비멜렉은 불로 세겜 사람들을 죽였고, 그 자신은 망대 위에서 던져진 맷돌 위짝에 맞아 죽었습니다. 하나님이 요담의 입술로 하게 하신 말씀을 그대로 이루셨습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우리가 누구를 닮아 가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아비멜렉은 아버지 기드온의 잘못된 모습을 그대로 닮았습니다. 우리도 주변 사람의 좋지 않은 모습을 나도 모르게 닮아 갈 때가 있습니다. 악한 사람과 부딪히며 살다 보면 그 모습과 비슷해집니다. 오늘 내가 누구의 모습을 닮아 가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삶을 삽시다.
또한 하나님이 갚으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이 갚으실 악을 행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혹시 누군가의 악행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있다면 내가 해결하고 처리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깁시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반드시 간섭하시고 해결하십니다. 갚으시는 하나님을 믿고 오늘 하루도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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