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서”(3절)
사사기에는 열두 명의 사사가 등장합니다. 어제 본문까지 우리는 열한 명의 사사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마지막 한 사람이 남았습니다. 유명한 삼손입니다. 13장부터 삼손의 이야기가 길게 이어집니다. 삼손 하면 들릴라가 먼저 떠오르지만, 삼손의 이야기는 사사기 전체의 흐름 안에서 자세히 보아야 합니다.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사사기에서 계속 되풀이되는 말입니다. 그런데 같은 악이 그대로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죄가 점점 더 깊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1절 하반절에서 드러납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40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사사기에서 이방 민족의 손에 넘겨진 기간 가운데 가장 긴 시간입니다. 그만큼 죄악이 컸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고통을 당하면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13장에는 부르짖었다는 말이 없습니다. 40년 동안 블레셋의 지배를 받으며 그 삶에 익숙해져 버린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그만큼 멀어져 있었습니다.
이어서 소라 땅 단 지파의 가족 중 마노아라는 사람이 소개됩니다. 삼손의 아버지입니다. 마노아라는 이름은 안식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마노아는 안식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나라는 블레셋의 압제 아래 있었고, 집안에도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했습니다. 그 시대에 자녀가 없다는 것은 큰 아픔이었고,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자녀를 위해 기도했다는 말도 없습니다. 이스라엘도 부르짖지 않고, 한 가정도 기도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그 시대 이스라엘의 영적 현주소입니다.
3절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납니다. 아무도 부르짖지 않는데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르짖지 않는 백성을 위해서도 먼저 한 가정을 찾아가시고, 그 가정을 통해 구원자를 보내십니다. 우리의 구원도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신 은혜입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난 사람은 남편이 아니라 아내였습니다. 본문에 남편의 이름은 마노아로 나오지만 아내의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남성 중심의 그 시대라면 하나님의 사자가 남편에게 나타날 것 같은데, 하나님은 이름도 기록되지 않은 아내에게 먼저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아이러니가 담겨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말합니다. 네가 본래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였으나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4절에서 조심할 것을 알려 주십니다. “그러므로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지니라” 태 안에 주실 새 생명을 위해 술을 마시지 말고, 율법이 부정하다고 정한 것을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5절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고 하십니다. 머리를 깎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 이유가 이것입니다.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나실인은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 하나님을 위해 구별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보통 나실인은 스스로 서원하고 정한 기간 동안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않고, 머리를 깎지 않으며, 시체를 만지지 않아야 합니다(민6장). 그런데 삼손은 태에서부터 하나님이 구별하셨고, 평생 나실인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이것이 보통 나실인과 다른 점입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왜 이런 방식으로 구원자를 보내실까요? 한 사람을 세워 여호와의 영을 부어 주시면 될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태어나기 전부터 구별된 사람을 보내십니다. 하나님은 삼손 이야기를 통해 이스라엘이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구별된 백성이었습니다. 이방인과 다르게 살아야 할 백성이었습니다.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잊고 살았습니다. 뒤에 나실인 삼손이 부정한 일을 가리지 않고 이방 여인을 가까이하는 모습은 바로 그 시대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말씀을 가까이하지 않는 백성에게 하나님은 이런 방식으로 깨닫게 하십니다.
여호와의 사자를 만난 여인은 남편에게 가서 내용을 전합니다. 그의 모습이 하나님의 사자의 용모 같아서 심히 두려웠다고 말합니다. 7절에서 여인은 들은 말을 전하는데, 여호와의 사자가 한 말과 비교하면 빠진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는 말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는 말입니다. 왜 빠뜨렸는지는 성경이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 집에서 태어날 아이가 이 형편에서 구원자가 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 “내가 그에게 명령한 것은 다 지킬 것이니라”(14절)
8절에서는 마노아가 여호와께 기도합니다. 주께서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다시 오게 하셔서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지를 가르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아내의 말을 믿지 못했다기보다 자기가 직접 듣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마노아에게는 이 일을 자기가 이끌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9절에서 하나님이 마노아의 목소리를 들으십니다. 어두운 시대에도 하나님은 한 사람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자가 다시 임한 곳은 이번에도 여인이 밭에 앉아 있을 때였고, 남편 마노아는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번에도 아내를 중심에 세우고 일하십니다. 10절에서 여인이 급히 달려가 남편에게 알리고, 11절에서 마노아가 아내를 따라가 그 사람에게 이릅니다.
12절에서 마노아가 묻습니다. “이제 당신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리이까” 그런데 13절과 14절에서 여호와의 사자는 새로운 말을 하지 않습니다. 내가 여인에게 말한 것들을 그가 다 삼가서 포도나무의 소산을 먹지 말고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고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며 내가 그에게 명령한 것은 다 지키라고 하십니다. 마노아는 새로운 것을 듣고 싶었지만, 필요한 말씀은 이미 주어져 있었습니다. 이미 주신 말씀을 지키는 것이 길입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우리가 구별된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도록 불러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영적인 나실인입니다. 이스라엘처럼 그것을 잊고 세상에 익숙해지지 말고, 세상과 다르게 말씀 중심으로 살아갑시다.
또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한 말은 그 시대 이스라엘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내가 명령한 것은 다 지킬 것이라고 하십니다. 어두운 시대를 사는 하나님의 백성이 살 길은 새로운 무엇을 찾는 데 있지 않고, 이미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순종하는 데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말씀을 묵상하며 순종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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