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3:15-25절 / 마땅히 여호와께 드릴지니라(26.09.29)

2026.09.29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내 이름은 기묘자라 하니라”(18절)

어제 본문에서 여호와의 사자는 이름도 기록되지 않은 마노아의 아내에게 나타나 나실인 아들을 약속하셨습니다. 마노아가 그 사람을 다시 보내 달라고 기도하자 하나님은 들으셨지만, 여호와의 사자는 이번에도 아내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마노아에게 여인에게 한 말을 다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뒤에 여호와의 사자와 마노아 부부 사이에 오간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을 이해하려면 먼저 한 가지를 구분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사자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처럼 몸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마노아의 집에 찾아온 분은 여호와의 사자였습니다.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셨기 때문에 마노아는 그분을 말씀을 전하는 사람 정도로 여겼습니다. 오늘 본문에 여호와의 사자라는 말이 여러 번 반복되는데, 16절 끝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는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마노아가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15절에서 마노아가 말합니다. “구하옵나니 당신은 우리에게 머물러서 우리가 당신을 위하여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게 하소서” 그 시대에는 찾아온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는 것이 예의였습니다. 게다가 이 사람은 자녀가 없던 집에 아들을 약속하고 그 아들이 이스라엘을 구원할 것이라고 말한 사람입니다. 마노아는 그를 잘 대접하고 싶었고, 곁에 머물게 하여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사자가 대답합니다. 네가 비록 나를 머물게 하나 네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6절 “번제를 준비하려거든 마땅히 여호와께 드릴지니라” 나를 대접하려 하지 말고 여호와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붙잡아 두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지켜야 할 말씀은 이미 주어졌습니다. 그 말씀대로 살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어두워진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잊고,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회복의 출발점도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설 때 다른 모든 부분의 회복이 시작됩니다.

마노아가 다시 묻습니다. 17절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니이까 당신의 말씀이 이루어질 때에 우리가 당신을 존귀히 여기리이다” 약속이 이루어지면 그 이름을 기억하고 높이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을 주시고 그 아들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마노아는 여전히 사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노아만의 모습이 아니라 그 시대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사람을 바라볼 때가 많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대답합니다. 18절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자라 하니라” 기묘자는 놀랍고 기이하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헤아릴 수 없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마노아에게 이름을 알려 준 것이 아니라, 네가 알 수 있는 이름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노아는 이름을 알아 두고 사람을 높이려 했지만, 여호와의 사자는 사람이 붙잡아 둘 수 있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우리 마음대로 통제하고 조종하려는 시도를 멈추어야 합니다.

● “그 여인이 아들을 낳으매 … 삼손이라 하니라”(24절)

마노아는 염소 새끼와 소제물을 가져다가 바위 위에서 여호와께 드립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이적이 일어났습니다. 여기서 이적이 일어났다는 말은 원문으로 보면 기이한 일을 행하셨다는 뜻이고, 18절의 기묘자와 같은 뿌리에서 나온 말입니다. 기묘자라는 이름이 무엇을 뜻하는지 바로 다음 절에서 보여 주신 것입니다.

20절에서 불꽃이 제단에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 동시에 여호와의 사자가 제단 불꽃에 휩싸여 올라갑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본 마노아와 그의 아내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습니다. 제물을 받으시는 분이 누구시며 이 일을 행하시는 분이 누구신지 분명해졌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고, 마노아는 그제야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 알았습니다. 마노아가 아내에게 말합니다. 22절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 하나님을 본 사람은 죽는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분이 여호와의 사자였다면 자기들은 하나님을 본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사람으로만 알았을 때는 대접하려 했는데, 누구신지 알고 나니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아내가 대답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죽이려 하셨다면 우리 손에서 번제와 소제를 받지 않으셨을 것이요, 이 모든 일을 보이지 않으셨을 것이며, 이런 말씀도 우리에게 하지 않으셨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주시고 그 아들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겠다고 하셨는데 우리가 죽으면 그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는 것입니다. 아내는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과 하신 말씀으로 판단했습니다. 아내가 참 지혜롭습니다.

24절에서 그 여인이 아들을 낳고 이름을 삼손이라 합니다. 삼손은 태양이라는 말에서 온 이름으로, 작은 태양이라는 뜻으로 풀기도 합니다. 그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25절에서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사사들과 함께하셨던 여호와의 영이 삼손과 함께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이루셨습니다.

13장에서 이 모든 일을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이 부르짖지도 않았는데 찾아오셔서 구원자를 약속하셨습니다. 그 아이가 어떤 사람인지 어머니에게 한 번, 아버지에게 또 한 번 알려 주셨습니다. 약속대로 삼손이 태어났고, 하나님은 그에게 복을 주시고 여호와의 영으로 함께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필요한 모든 것을 이미 주셨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삼손이 나실인답게 살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책임이 아니라 삼손의 책임입니다. 받은 은혜와 사명을 잊고 사는 삼손의 모습은 그 시대 이스라엘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가장 어두운 때에 하나님이 찾아오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가장 어두울 때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우리도 의지할 사람이 없고 형편이 너무 힘들고 누구도 내 사정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은 때가 있습니다. 그때 찾아오셔서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사람을 붙잡지 말고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마노아는 여호와의 사자를 곁에 붙잡아 두려 했지만, 여호와의 사자는 여호와께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누군가를 붙잡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고 이미 주신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복된 삶입니다.

0개의 댓글

댓글 제출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