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4:1-20절 /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26.09.30)

2026.09.30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고”(1절)

어제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부르짖지도 않았는데 마노아의 가정을 찾아오셔서 구원자를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입니다. 약속대로 삼손이 태어났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셨으며,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13:24-25절). 이제 이 어두운 시대에 삼손이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원할지 기대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 기대를 깨는 삼손의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1절에서 삼손은 딤나에 내려갑니다. 딤나는 본래 이스라엘에게 주신 땅이었지만 아직 차지하지 못해 블레셋 사람들이 다스리던 곳입니다. 삼손이 할 일은 블레셋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빼앗긴 땅을 되찾는 것입니다. 그런데 삼손의 관심은 거기에 있지 않았습니다. 삼손은 거기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 한 여자를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본다’는 말이 반복됩니다. 1절에서 “한 여자를 보고”, 2절에서 부모에게 “한 여자를 보았다”고 말합니다. 3절에서 삼손은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한다”고 하는데, 원문으로 보면 “그 여자가 내 눈에 옳다”는 말입니다. 7절에서도 “그 여자가 삼손의 눈에 들었다”고 합니다. 이 표현은 사사기가 그 시대를 두고 되풀이하는 말, 곧 “사람들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17:6,21:25절). 삼손은 하나님의 기준이 아니라 자기 눈에 좋은 대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 시대 이스라엘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방 사람과 결혼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방 사람을 가까이하다 보면 그들이 섬기는 우상을 섬기게 되고, 결국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것보다 위험한 일입니다. 그런데 삼손에게 그 말씀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이고, 나는 내 눈에 좋은 대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말합니다. 3절 “네 형제들의 딸들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맞으려 하느냐” 부모는 하나님의 기준으로 말했습니다. 그가 어떻게 잉태되어 태어났으며, 무엇을 해야 할 사람인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삼손은 듣지 않고, 나를 위하여 그 여자를 데려오라고 부모에게 명령하듯 말합니다. 한 여자에게 눈이 멀어 하나님이 주신 사명도, 부모의 말도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4절이 뜻밖의 말을 합니다.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까닭에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의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삼손이 블레셋을 치려고 이 여자를 택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삼손은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자기 좋은 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삼손을 통해서도 블레셋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계획을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뜻에 관심이 없다고 해서 하나님이 일을 멈추시지 않습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며 그 뜻을 이루어야 할 백성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삼손이 부모와 함께 딤나에 내려가 포도원에 이릅니다. 포도원은 포도주와 관련이 있는 곳입니다. 나실인은 포도주를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사람인데 그 근처를 서성입니다. 거기서 젊은 사자가 삼손을 보고 소리를 지릅니다. 6절에서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니 그가 손에 아무것도 없이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는 것 같이 찢었습니다. 지금까지 여호와의 영이 사사에게 임하면 사사는 대적과 싸워 이스라엘을 구원했습니다. 그런데 삼손은 사자를 찢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부모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그 여자를 맞이하려고 다시 가다가 돌이켜 사자의 주검을 보니 벌 떼와 꿀이 있었습니다. 나실인은 시체를 가까이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9절에서 삼손은 손으로 그 꿀을 떠서 걸어가며 먹고, 부모에게도 주어 먹게 합니다. 그 꿀을 사자의 몸에서 떠왔다고는 알리지 않았습니다. 해서는 안 되는 유혹일수록 달콤하게 다가옵니다. 삼손은 거기에 아무 거리낌 없이 넘어갔고, 부모까지 부정하게 만들었습니다.

●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19절)

10절에서 삼손의 아버지가 여자에게로 내려가고, 삼손은 거기서 잔치를 베풉니다. 그 시대 잔치에는 술이 빠지지 않았습니다. 나실인으로 구별되었지만 삼손은 그렇게 살 생각이 없었습니다. 11절에서 블레셋 사람들이 삼십 명을 데려와 삼손의 친구로 삼아 함께하게 합니다.

삼손은 그들에게 수수께끼를 냅니다. 잔치하는 이레 동안 풀면 베옷 30벌과 겉옷 30벌을 주고, 풀지 못하면 그들이 같은 것을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상당한 액수를 걸었습니다. 수수께끼는 이것입니다. 14절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자기가 사자의 주검에서 꿀을 먹은 일입니다. 자기만 본 일을 두고 낸 수수께끼를 다른 사람이 어떻게 맞히겠습니까? 그들은 사흘이 되도록 풀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의 아내를 협박합니다. 남편을 꾀어 답을 알아내지 않으면 너와 네 아버지의 집을 불사르겠다고 합니다. 16절에서 아내는 삼손 앞에서 울며 당신이 나를 미워할 뿐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17절에서 아내가 잔치하는 칠 일 동안 울며 강요하자, 삼손은 결국 일곱째 날에 답을 알려 주고 아내는 그것을 자기 백성에게 알려 줍니다.

18절에서 성읍 사람들이 답을 말합니다. “무엇이 꿀보다 달겠으며 무엇이 사자보다 강하겠느냐” 어쨌든 수수께끼의 정답을 말한 것입니다. 약속대로 옷을 주어야 합니다. 19절에서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삼손은 블레셋 땅 아스글론에 내려가 그곳 사람 30명을 쳐 죽이고 그 옷을 빼앗아 수수께끼 푼 자들에게 줍니다. 그리고 심히 노하여 아버지의 집으로 올라갑니다. 혼자서 30명을 죽일 만큼 큰 능력입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영이 주신 그 능력을 삼손은 자기 분노를 푸는 데 썼습니다. 6절도, 19절도 그렇습니다.

20절에서 삼손의 아내는 삼손의 친구였던 사람에게 주어졌습니다. 이 일은 뒤에 더 큰 문제로 이어집니다. 삼손의 모습은 그 시대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구별된 백성으로 선택받았고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셨지만, 그 은혜를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 욕망과 이익을 위해 썼습니다. 사사기는 삼손을 통해 그 시대 이스라엘의 영적인 형편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이 시대 우리를 돌아보게 합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내 눈에 좋은 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삼손은 구별된 사람으로 태어나 여호와의 영이 함께했지만,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았습니다. 그것이 그 시대 이스라엘의 모습이었고, 어쩌면 오늘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 하면서 세상 사람들처럼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고 있지 않은지 돌아봅시다.

또한 성숙한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삼손도, 그 여인의 집도, 블레셋 사람들도 성숙하지 못하니 문제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해도 성숙하지 못하면 일어나지 않아도 될 문제 속에서 살게 됩니다. 말씀 안에서 성숙한 신앙이 내 삶에 안정감을 주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복되게 하며,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아름답게 이루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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