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6:1-14절 / 삼손과 들릴라(26.10.02)

2026.10.2 | 매일성경 | 코멘트 1개

● “삼손이 가사에 가서”(1절)

어제 본문에서 삼손은 여우 300마리로 블레셋의 곡식 밭을 태웠고, 유다 사람 3,000명에게 결박되어 블레셋에 넘겨졌지만 여호와의 영이 임하자 밧줄을 끊고 나귀의 턱뼈로 천 명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목이 말라 죽게 되었을 때 처음으로 여호와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샘을 터뜨려 그를 살리셨습니다. 그 샘이 엔학고레, 부르짖는 자의 샘입니다. 이만큼 은혜를 경험했다면 삼손이 달라지기를 기대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삼손은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1절에서 삼손은 가사에 갑니다. 가사는 블레셋의 중심 성읍 가운데 하나입니다. 삼손은 거기서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갔습니다. 14장에서 블레셋 딤나의 한 여자를 보고 좋아했던 모습 그대로입니다. 이번에도 삼손은 눈에 보이는 대로 움직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사사가 이스라엘 땅이 아니라 계속 블레셋 땅에 머물고 있습니다. 블레셋은 삼손이 즐길 곳이 아니라 맞서 싸워야 할 곳입니다. 나실인이요 사사인 삼손은 하나님과 말씀에 마음을 두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삼손의 관심은 세상의 즐거움과 쾌락에 있었습니다. 누가 삼손을 떠밀어서 죽음의 길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삼손이 스스로 그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생명이 아니라 죽음을 향해 걸어가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것은 영적인 눈이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블레셋에게 삼손은 눈엣가시였습니다. 2절에서 삼손이 왔다는 소식이 가사 사람들에게 알려집니다. 그들은 곧 그곳을 에워싸고 밤새도록 성문에 매복하고 밤새도록 조용히 기다립니다. 밤새도록이라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새벽이 되면 그를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삼손의 힘을 알고 있으니 많은 사람이 숨죽이고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3절에서 삼손은 밤중까지 누워 있다가 그 밤중에 일어납니다. 그리고 성 문짝들과 두 문설주와 문빗장을 빼어 어깨에 메고 헤브론 앞산 꼭대기로 갑니다. 집 문이 아니라 성문입니다. 그것을 통째로 뽑아 메고 간 것입니다. 이런 힘을 가진 사람을 누가 당하겠습니까? 블레셋 사람들은 이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아내지 못하면 계속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음 이야기는 삼손의 힘의 근원을 알아내려는 작전으로 이어집니다.

● “들릴라라 이름하는 여인을 사랑하매”(4절)

4절에서 삼손은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는 여인을 사랑합니다. 소렉 골짜기는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경계 지역입니다. 들릴라가 어느 민족인지 본문은 말하지 않지만, 지금까지 삼손이 사랑한 여인들을 보면 블레셋 여인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기에 블레셋 방백들이 그녀에게 돈을 주고 삼손을 넘기라고 제안합니다. 그리고 본문은 삼손이 들릴라를 사랑했다고만 말할 뿐, 들릴라가 삼손을 사랑했다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어제까지 한 여인 때문에 그 많은 일을 겪었으면 이제는 하나님께 마음을 두어야 할 텐데, 삼손은 또 다른 여인을 찾고 또 찾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으로 마음을 채우지 못하면 사람은 다른 것으로 자기를 채우려 합니다. 삼손은 여인으로, 어떤 사람은 돈으로, 어떤 사람은 권력이나 쾌락으로 채우려 합니다. 그러나 그 무엇으로도 마음은 채워지지 않고, 그럴수록 그것이 우리를 결박하여 죽음으로 끌고 갑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말씀으로, 또한 기도로 채워져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5절에서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들릴라를 찾아옵니다. 블레셋은 다섯 성읍의 방백들이 다스렸습니다. 그들이 삼손을 꾀어서 그 큰 힘이 무엇으로 생기는지, 어떻게 하면 결박하여 굴복하게 할 수 있는지 알아내라고 합니다. 그러면 각각 은 천백 개씩을 주겠다고 합니다. 다섯 방백이면 은 5,500개, 엄청난 돈입니다. 블레셋은 그만한 돈을 들여서라도 삼손을 없애는 것이 이득이라고 보았습니다.

꾀어서라는 말은 14장에서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의 아내에게 네 남편을 꾀어 수수께끼를 알아내라고 할 때 쓴 말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삼손을 바로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결박하여 굴복하게 하려 합니다. 철저히 욕보이고 싶을 만큼 복수심에 불타 있었습니다.

들릴라는 돌려 말하지도 않고 바로 묻습니다. 6절 “청하건대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며 어떻게 하면 능히 당신을 결박하여 굴복하게 할 수 있을는지 내게 말하라” 블레셋 방백들이 한 말 그대로입니다. 들릴라는 삼손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포상금을 타는 수단으로 이용할 뿐입니다. 삼손이 제정신이었다면 이 질문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아차렸어야 합니다. 막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삼손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7절에서 삼손은 마르지 않은 새 활줄 일곱으로 결박하면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아질 것이라고 거짓으로 대답합니다. 8절에서 방백들이 활줄을 가져오고 들릴라가 삼손을 결박합니다. 9절에서 이미 사람들이 방 안에 매복해 있었습니다. 들릴라가 블레셋 사람들이 들이닥쳤다고 외치자 삼손은 그 줄을 불탄 삼실 끊듯이 끊습니다. 그의 힘의 근원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가사에서는 성 밖에 숨은 매복을 뚫고 나간 삼손이, 이번에는 대적이 바로 방 안에 있는데도 알아채지 못합니다. 계속해서 본문은 삼손의 눈이 멀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음 본문에서 삼손이 붙잡혀 가장 먼저 당하는 일이 눈을 뽑히는 일입니다.

10절에서 들릴라는 당신이 나를 희롱하여 거짓말을 했다며 다시 묻습니다. 삼손은 쓰지 않은 새 밧줄로 결박하면 약해질 것이라고 대답하고, 들릴라가 새 밧줄로 결박하지만 삼손은 팔 위의 줄을 실 끊듯이 끊습니다. 이때도 사람들이 방 안에 매복해 있었습니다. 들릴라가 자기를 블레셋에 넘기려 한다는 것을 두 번이나 겪고도 삼손은 그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들릴라도 포기하지 않고 묻자 삼손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13절 “그대가 만일 나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베틀의 날실에 섞어 짜면 되리라” 처음으로 머리털 이야기가 나옵니다. 들릴라는 바디로 그 머리털을 단단히 짭니다. 바디는 베틀에서 씨실을 쳐서 천을 촘촘하게 짜는 도구입니다. 삼손은 잠을 깨어 베틀의 바디와 날실을 다 빼냅니다. 이번에도 힘은 그대로였지만, 삼손의 대답은 점점 말해서는 않되는 비밀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삼손은 그 질문을 처음부터 끊었어야 했습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무엇을 가까이하며 사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삼손은 하나님과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며 살아야 할 나실인이었지만, 세상과 쾌락과 여인을 가까이했습니다. 그 큰 힘을 가진 사람을 무너뜨린 것은 더 큰 힘이 아니라 한 여인이었습니다.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도 거창한 것이 아니라 가까이 둔 작은 유혹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힘입니다. 그 힘을 스스로 내려놓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은 없습니다.

또한 영적인 눈을 떠야 합니다. 무엇인가에 눈이 멀면 사람은 스스로 죽음의 길로 걸어갑니다. 삼손은 여인에게 눈이 멀었고, 오늘 많은 사람은 돈과 권력과 욕심에 눈이 멀어 삽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려면 말씀의 눈을 떠야 합니다. 말씀이 쉽지 않아도 붙잡고 묵상하며, 말씀으로 서로를 세워 갑시다.

코멘트 1개

  1. 상옥

    들릴라가 힘이 어디서 오는지 물었을때 힘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고 결코 나를 결박할수 없다. 하나님은 반드시 승리하신다고 말했다면..

    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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