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8:21-31절 / 내가 만든 신들(26.10.06)

2026.10.6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내가 만든 신들과 제사장을 빼앗아 갔으니”(24절)

17, 18장의 중심에는 미가가 있습니다. 미가는 하나님을 섬긴다며 자기 집에 신상을 만들고 신당을 세웠습니다. 떠돌던 레위 청년을 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 어제 본문에서는 단 지파가 자기 기업의 땅을 차지하지 못해 새 땅을 찾아 나섰습니다. 무기를 든 600명이 북쪽으로 가는 길에 미가의 집에 들러 신상들을 가져갔고, 한 집의 제사장보다 한 지파의 제사장이 낫지 않느냐는 말에 그 제사장도 기뻐하며 따라갔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뒤의 이야기입니다.

단 자손은 돌이켜서 어린아이들과 가축과 값진 물건들을 앞세우고 길을 떠납니다. 군사들은 뒤에 섰습니다. 미가가 사람들을 데리고 쫓아올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이 미가의 집을 멀리 떠났을 때 미가의 이웃집 사람들이 모여 단 자손을 추격합니다. 600명이 무기를 들고 있을 때는 가만히 있던 미가가 그들이 떠나자 이웃을 모아 뒤쫓은 것입니다. 단 자손이 얼굴을 돌려 미가에게 말합니다. 23절 “네가 무슨 일로 이같이 모아 가지고 왔느냐”는 것입니다. 뻔뻔합니다. 남의 것을 가져가 놓고 사과는커녕 무슨 일이냐고 묻습니다. 왜 왔는지 알면서 힘으로 위협하고 있습니다.

미가가 대답합니다. 24절 “내가 만든 신들과 제사장을 빼앗아 갔으니 이제 내게 오히려 남은 것이 무엇이냐” 신상과 제사장 내놓으라는 겁니다. 이스라엘 사람들끼리 지금 우상을 두고 다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집중하고 말씀을 가까이해야 할 하나님의 백성이 우상을 빼앗고 되찾으려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미가는 “내가 만든 신들”이라고 말합니다. 27절도 “미가가 만든 것”이라고 하고, 31절도 “미가가 만든 바 새긴 신상”이라고 합니다. 만들었다는 말이 반복됩니다. 미가는 여호와를 위해 만든다고 생각했지만, 사람이 하나님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어떤 형상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우상은 내 필요와 내 유익을 위해 내가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우상은 나를 지켜 주지 못하고 오히려 빼앗깁니다. 우상이 없었다면 단 지파가 미가의 집에 이런 일을 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우상 때문에 미가는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사람의 악한 본성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시고 사람은 피조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하나님을 내 뜻대로 움직이고 싶어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사는 것보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이 해 주시기를 바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 원하는 것이 강할수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잊어버립니다.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서 문제가 생기면 왜 안 해 주시느냐고 항변하는 것도 그런 모습입니다.

미가에게 단 자손이 말합니다. 25절 “네 목소리를 우리에게 들리게 하지 말라, 노한 자들이 너희를 쳐서 네 생명과 네 가족의 생명을 잃게 할까 하노라” 입 다물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으로 백성에게 공의롭게 살고 약한 사람을 도우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같은 하나님의 백성이 서로 위협하고 있습니다. 26절에서 미가는 단 자손이 자기보다 강한 것을 보고 돌이켜 집으로 돌아갑니다. 힘 있는 사람이 힘없는 사람의 것을 빼앗고 위협합니다. 세상과 다르지 않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이렇게 됩니다. 이스라엘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왕이 되지 않으시면 우리 개인의 삶도, 가정도, 교회 공동체도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31절)

27절에서 단 자손은 미가가 만든 것과 그 제사장을 데리고 라이스에 이릅니다. 우상과 제사장이 함께 있으니 하나님도 우리 편이라 여겼을 것입니다. 그들은 한가하고 걱정 없이 사는 백성을 만나 칼날로 치고 그 성읍을 불살랐습니다. 라이스 사람들을 두고 염려 없이 거주하는 백성(7절), 평화로운 백성(10절), 한가하고 걱정 없이 사는 백성(27절)이라는 말이 되풀이됩니다. 서로 믿고 평화롭게 살던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칼로 쳐서는 안 됩니다. 칼날로 치고 성읍을 불사르는 것은 하나님이 가나안 족속의 죄악을 심판하실 때 하라고 하신 일이었습니다. 라이스는 그런 땅이 아니었습니다.

단 지파가 정말 싸워야 할 상대는 하나님이 주신 땅을 차지하고 있던 아모리 족속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싸우겠다고 약속하셨지만, 단 지파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고 강해 보이는 아모리 족속과 싸우기를 피했습니다. 대신 힘없고 평화로운 라이스를 쳤습니다. 싸워야 할 상대와는 싸우지 않고, 싸우지 말아야 할 상대와 싸웠습니다. 신앙생활에서도 가장 안타까운 일은 싸울 대상을 잘못 찾는 것입니다. 약한 사람을 짓밟아서도 안 되고, 같은 하나님의 백성끼리 싸워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상대는 어둠의 세력입니다. 세상 정신입니다.

라이스는 구원할 자가 없었습니다. 시돈과 거리가 멀고 상종하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단 자손은 그곳에 성읍을 세우고 거주합니다. 그들의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 성읍 이름을 단이라 했습니다.

30절에서 단 자손은 자기들을 위하여 그 새긴 신상을 세웠습니다. 새 땅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신상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지금 함께 한 제사장의 정체가 드러납니다. “모세의 손자요 게르솜의 아들인 요나단”입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고 가나안 앞까지 인도한 모세,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그 모세의 후손이 우상을 섬기는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그만큼 무너졌습니다. 30절은 요나단과 그의 자손이 그 땅 백성이 사로잡히는 날까지 단 지파의 제사장이었다고 말합니다. 많은 학자들은 이것을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사로잡혀 간 때로 봅니다. 우상을 숭배하다 결국 멸망한 것입니다.

31절이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미가가 만든 바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더라” 하나님의 집은 성막입니다. 가나안에 들어온 뒤 성막은 실로에 있었고, 거기에는 하나님의 임재와 말씀을 상징하는 언약궤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실로의 하나님의 집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했습니다. 그런데 단 지파는 하나님의 집이 있는데도 사람이 만든 신상을 따로 세워 섬겼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무엇에 열심을 내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미가도 단 지파도 열심이 있었지만, 그 열심은 우상을 향한 열심이었습니다. 우리의 열심이 하나님과 말씀과 하나님 나라를 향하고 있는지, 헛된 것을 향하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얼마나 열심히 사느냐보다 무엇을 향해 열심히 사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답게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의 삶은 강한 자 앞에서는 약하고 약한 자 앞에서는 강한 약육강식의 삶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삶은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삶입니다. 오늘 하루도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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