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20:29-48절 / 승리 아닌 승리(26.10.12)

2026.10.12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베냐민을 치시매”(35절)

사사기는 21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이제 한 장이 남았습니다. 갈수록 혼란스러운데, 그 혼란의 중심에 레위인이 있습니다. 레위인은 기브아에서 자기 첩을 밖으로 내보내 죽게 하고도 자기 잘못은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첩의 시체를 열두 덩이로 나누어 보냈고, 이스라엘은 레위인의 말만 듣고 하나님께 묻지도 않은 채 베냐민과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숫자로 보면 싸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연합군은 40만 명, 베냐민은 2만 6천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연합군은 두 번이나 패했습니다. 그제야 그들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울며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28절에서 하나님은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넘겨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말씀대로 전쟁이 어떻게 끝났는지를 보여 줍니다.

29절에서 이스라엘은 기브아 주위에 군사를 매복시킵니다. 전에는 숫자만 믿고 정면으로 싸웠지만 두 번이나 지고 나서 작전을 바꾸었습니다. 성읍 가까이에 군사를 숨겨 두고, 앞의 군대는 지는 척 물러나 베냐민을 성읍 밖으로 유인하는 작전이었습니다. 셋째 날 이스라엘은 전과 같이 기브아에 맞서 전열을 갖춥니다.

아니나 다를까 31절에서 베냐민 자손은 나와 맞서다가 꾀임에 빠져 성읍을 떠납니다. 그들은 큰길에서 전과 같이 이스라엘 사람 30명가량을 죽이기 시작합니다. 베냐민 자손은 이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 앞에서 패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들을 성읍에서 큰길로 꾀어내려는 것이었습니다. 지는 척하며 물러나 베냐민 군대를 성읍 밖으로 끌어낸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작전에 베냐민이 말려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전과 같이’, ‘처음과 같이’라는 말이 반복됩니다(30,31,32,39절). 두 번을 이기고 나니 베냐민은 이번에도 당연히 이긴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의 승리가 베냐민을 교만하게 만들었고, 그 교만이 패배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한 순간의 교만이 패배의 시작이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바알다말에서 전열을 갖추고, 기브아 초장에 숨어 있던 복병들은 쏟아져 나옵니다. 그런데 3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베냐민 사람은 화가 자기에게 미친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승리에 취해 이미 함정에 빠진 것도 몰랐습니다. 교만은 눈앞의 위험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35절이 전쟁의 결론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베냐민을 치시매” 그날 베냐민 사람 2만 5천1백 명이 죽었습니다. 이 전쟁은 하나님이 베냐민을 치신 일이었습니다. 기브아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고, 이스라엘이 그 불량배들을 내놓으라고 했을 때 베냐민은 듣지 않았습니다. 심각한 죄에 무감각하고 자기 편만 감싸는 베냐민을 하나님이 징계하신 것입니다.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내 사람이라는 이유로 덮어 주는 것은 공동체를 지키는 길이 아닙니다. 베냐민은 지파를 지키려다 지파 전체를 잃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내 편인지 아닌지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옳은지 그른지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죄를 바로 다룰 때 공동체가 삽니다.

● “그 가운데에서 진멸하니라”(42절)

36-46절까지는 이 전쟁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다시 자세하게 기록합니다. 36절에서 이스라엘이 잠깐 물러난 것은 기브아에 매복한 군사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복병은 급히 기브아로 돌격하여 온 성읍을 칩니다. 40절에서 연기 구름이 기둥같이 성읍 가운데서 치솟습니다. 복병과 미리 약속한 신호였습니다. 성읍이 점령되었다는 뜻입니다. 베냐민 사람들이 그제서야 뒤를 돌아보니 온 성읍이 불타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도망하던 이스라엘 군사가 베냐민 군대를 향해 돌아서자, 화가 자기들에게 미친 것을 보고 크게 놀랍니다. 그들은 광야 길로 도망하지만, 이스라엘은 뒤쫓아 그 가운데에서 진멸합니다.

43절부터는 구체적으로 몇 명이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를 설명합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잔인하고 집요하게 베냐민 지파를 죽였는지 고발하는 겁니다. 베냐민을 에워싸고 추격하며 그들이 쉬는 곳에서 짓밟습니다. 44절에서 1만 8천 명이 쓰러졌고, 45절에서 림몬 바위로 가는 큰길에서 또 5천 명을 이삭 줍듯 하고, 기돔까지 쫓아가 2천 명을 더 죽입니다. 그날 쓰러진 베냐민 용사가 모두 2만 5천 명이었습니다. 600명만 림몬 바위로 도망하여 넉 달 동안 지냈습니다. 2만 6천 명이 넘던 베냐민의 군대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600명뿐이었습니다. 이미 승부가 결정났음에도 이스라엘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본문은 “진멸했다, 추격했다, 짓밟았다, 이삭 줍듯 했다”는 말로 이스라엘이 동족 베냐민을 얼마나 처절하게 죽였는지 자세히 기록합니다. 48절은 군사만이 아니라 온 성읍과 가축과 만나는 자를 다 칼날로 치고 닥치는 성읍을 모두 불살랐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멸하는 일은 하나님이 죄악이 가득한 가나안 족속을 심판하실 때 하라고 하신 일이었습니다. 동족에게 하라고 하신 적은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족속은 끝까지 진멸하지 못하고, 동족은 진멸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것이 승리일까요? 물론 기브아의 죄는 다루어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한 지파를 이렇게 없애고 성읍을 불살라야 할 일이었는지 사사기 저자는 묻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정의감에 시작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내일 본문에서 이 승리는 또 다른 혼란으로 이어집니다. 한 지파가 사라질 위기에 놓이자 이스라엘은 다시 문제를 풀려고 애쓰게 됩니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행한 폭력이 또 다른 문제를 낳는 악순환입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께 묻지 않으면, 이긴 것 같아도 이긴 것이 아닙니다. 계속되는 혼란입니다. 이스라엘은 이 전쟁에서 이겼지만, 열두 지파 가운데 한 지파를 거의 잃어버렸습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지난 승리로 인해 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베냐민은 두 번의 승리에 취해 이번에도 전과 같이 이길 것이라 여기다가 무너졌습니다. 우리도 전에 잘했던 일을 습관처럼 되풀이하며 하나님께 묻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익숙하고 자신 있는 일일수록 하나님 앞에서 이 일을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의 뜻인지 물어야 합니다. 늘 해 오던 일이라도 하나님께 묻는 것이 지혜로운 성도의 모습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없는 승리는 승리가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잘된 것 같아도 결국 더 큰 혼란과 문제로 이어집니다. 작은 일 하나도 하나님께 묻고 그 뜻을 따라 결정합시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안정감 있고 견고하게, 그리고 복되게 이끌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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