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21:13-25절 / 회복의 출발점(26.10.14)

2026.10.14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베냐민 자손에게 … 평화를 공포하게 하였더니”(13절)

오늘로 사사기를 마칩니다. 베냐민 지파와 나머지 열한 지파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고, 2만 6천 명이 넘던 베냐민 군대에서 600명만 살아남았습니다. 한 지파가 사라질 위기에 놓이자 이스라엘은 그제야 방법을 찾습니다. 어제 본문에서 그들은 베냐민에게 자기 딸을 주지 않겠다는 맹세를 지키려고 야베스 길르앗을 치고 처녀 400명을 데려왔습니다. 아직 200명이 부족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 200명을 채우는 이야기로 사사기가 끝이 납니다.

먼저 온 회중은 림몬 바위에 있는 베냐민 자손에게 사람을 보내 평화를 공포합니다. 그렇게 치열하게 싸우고 많은 사람을 죽였는데, 이제 평화를 말합니다. 처음부터 이렇게까지 싸울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 주는 셈입니다. 베냐민이 돌아오자 야베스 길르앗의 여자들을 아내로 주지만 아직 부족합니다.

15절은 “백성들이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쳤으니”라고 합니다. 전쟁의 결과가 너무 참담하자 그제야 후회합니다. 하나님께 먼저 묻고 하나님의 방법을 찾았어야 했는데, 분노와 감정대로 움직이고 나서 때늦은 후회를 하고 있습니다. 오지 않아도 될 자리까지 와 버렸습니다. 문제를 풀겠다고 한 일이 또 다른 문제를 만들고, 그 문제를 풀려고 또 다른 일을 벌이는 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15절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지파들 중에 한 지파가 빠지게 하셨음이었더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을 징계하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베냐민을 끝까지 쫓아가 거의 없앤 것은 이스라엘의 분노와 잔인함이었습니다. 자기들이 만든 결과를 하나님이 하신 일로만 돌릴 수는 없습니다.

이제 회중의 장로들이 의논합니다. 베냐민의 여인이 다 멸절되었으니 남은 자들이 어떻게 아내를 얻게 할 것인가, 한 지파가 사라지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옳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번에도 하나님께 묻지 않고 자기들끼리 방법을 찾습니다. 지금 당장 혼인하지 않는다고 일이 급해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 묻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돌아볼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방법도 하나님께 물어야 했습니다.

18절에서 그들은 다시 미스바에서 했던 맹세를 떠올립니다. 딸을 베냐민에게 아내로 주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고 맹세했으니 자기 딸은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맹세가 아니라 자기들이 분노 가운데 한 맹세입니다. 그 맹세를 지키려고 또 다른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없이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만 행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25절)

19절에서 장로들은 실로에서 해마다 여호와의 명절이 있다는 것을 떠올립니다. 실로는 하나님의 집이 있던 곳입니다. 절기는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날입니다. 이 혼란한 시대에도 절기에 실로에 올라와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며 춤추는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20-21절에서 장로들은 베냐민 자손에게 포도원에 숨어 있다가 실로의 여자들이 춤추러 나오면 각각 하나씩 붙들어 아내로 삼아 돌아가라고 지시합니다. 납치를 허락합니다.

충격적인 계획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러 왔다가 붙들려 가서 알지 못하는 사람과 평생을 살아야 했던 여인들의 마음이 어땠겠습니까? 그들의 가족은 또 어땠겠습니까? 출21:16절은 “사람을 납치한 자가 그 사람을 팔았든지 자기 수하에 두었든지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합니다. 납치는 사형에 해당하는 죄입니다.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모여서 결정한 일이 하나님의 율법을 정면으로 어기는 일이었습니다.

근본 문제는 이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고민하고 방법을 찾습니다. 그러나 그 고민 속에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찾아낸 방법이 또 다른 문제를 낳았습니다. 우리도 문제가 생기면 열심히 고민하지만, 세상의 방법과 세상의 기준으로 결정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게 하면 풀릴 줄 알았는데 더 큰 혼란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내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복된 삶의 길입니다.

22절에서 장로들은 가족들의 항의에 대한 대답까지 준비해 둡니다. 여인의 아버지나 형제가 와서 따지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달라고 하겠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준 것이 아니라 빼앗긴 것이니 맹세를 어긴 죄는 너희에게 없다고 말하겠다는 것입니다. 한 여인과 한 가정의 아픔을 은혜라는 말로 덮으라고 합니다. 이 모든 의논 가운데 정작 붙들려 간 여인들을 걱정하는 말은 한 마디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나그네와 과부 같은 약한 사람이 보호받는 공동체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연약한 여인들이 이렇게 다루어졌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완전히 무너졌다는 뜻입니다.

베냐민 자손은 그대로 행하여 춤추는 여자들 가운데 자기들의 숫자대로 붙들어 아내로 삼고, 자기 기업으로 돌아가 성읍을 건축하고 거기 거주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도 각기 자기 지파와 가족에게로, 자기 기업으로 돌아갑니다. 전쟁은 끝났고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겉으로는 일이 수습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는 한, 어디로 돌아가든 혼란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19-21장까지 이어진 이 사건은 레위인의 첩이 기브아에서 욕을 당하는 일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실로의 딸들이 붙들려 가는 일로 끝납니다. 시작도 끝도 연약한 여인들이 짓밟히는 일입니다. 사사기는 이렇게 이스라엘 사회가 어디까지 무너졌는지를 보여 줍니다.

25절이 사사기의 마지막 절입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17:6절에서 사사기의 마지막 이야기들을 시작할 때 한 말이 여기서 다시 나옵니다. 왕이 없었다는 것은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사람마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했고, 그 결과가 이 혼란과 어두움이었습니다. 사사기는 이스라엘이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진 것이 아니라 조금씩 내리막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크고 작은 일마다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자 하나님께 묻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결정했고, 그 결과가 이렇게 참담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순간순간의 선택은 내 뜻대로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나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지, 이런 혼란을 가져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합니다. 작은 일 하나에도 하나님께 묻고 말씀의 기준으로 결정합시다.

또한 회복도 서서히 이루어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조금씩 무너져 여기까지 왔다면, 우리가 작은 일 하나부터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할 때 우리의 삶은 서서히 회복됩니다. 사사기를 슬픔으로만 덮지 말고,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날마다의 순종으로 회복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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