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03 | 매일성경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함께 돌아온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1절)
오늘 본문에는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에 관한 명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1장에도 10절부터는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 명단이었습니다. 그런데 11장은 당시 예루살렘에 거주한 자들의 명단이라고 한다면, 본문은 1차 포로 귀환 때부터 시작해서 계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명단을 따로 소개하는 이유는 12:27절부터 시작되는 성벽 봉헌식을 위한 준비과정입니다. 더 중요한 이유는 성벽이 완공된 후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이 이전의 영광을 회복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예배하는 일을 담당하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입니다. 이런 기록을 통해 우리는 느헤미야의 관심을 알 수 있습니다. 외형적인 건물이 잘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회복 우선입니다. 성전 제도의 회복이 먼저입니다. 본문은 우리에게도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1절은 1차 포로 귀환 때부터 시작합니다. 느헤미야 시대로부터 약 100여년 정도 앞선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함께 돌아온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이러하니라” 페르시아 고레스왕의 마음의 하나님께서 감동하셔서 귀환하게 합니다. 스룹바벨은 총독으로 정치 지도자였고, 예수아는 대제사장으로 종교 지도자였습니다. 1-7절에는 돌아온 제사장들의 대표 22인 명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음은 이때 함께 돌아온 레위 사람 명단입니다. 제사장들의 명단이 많은 반면 레위 사람 지도자는 6명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감당했던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8절 “이 맛다냐는 그의 형제와 함께 찬송하는 일을 맡았고 또 그들의 형제 박부갸와 운노는 직무를 따라 그들의 맞은편에 있으며” 24절도 그렇습니다. “레위 족속의 지도자들은 하사뱌와 세레뱌와 갓미엘의 아들 예수아라 그들은 그들의 형제의 맞은편에 있어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명령대로 순서를 따라 주를 찬양하며 감사하고” 이들은 찬양대를 조직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을 합니다. 그런데 맞은편에도 찬양대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찬양대가 둘로 나뉘어 서로 찬양으로 화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성전과 관련하여 노래하는 자들의 이야기가 빠지지 않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돌리는 것이 성전 예배에서 중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이유가 사43:21절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합니다. 입술의 찬양으로, 뿐만 아니라 우리의 아름다운 삶이 찬양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신앙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아는 요야김을 낳고”(10절)
10절부터는 대제사장의 계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1차 포로 귀환 때 예수아부터 시작해서 요아김, 엘리아십, 요야다, 요나단, 그리고 얏두아입니다. 느헤미야 시대에는 엘리아십이 대제사장으로 섬기고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영적인 부분을 책임지는 중요한 자리입니다. 신앙이 어떻게 이어져 사명을 잘 감당하느냐가 이스라엘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이처럼 신앙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는 것이 아닌 역사 속에서 신앙의 전수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현재 이처럼 신앙생활 할 수 있는 것은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킨 신앙의 선배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본이 되는 신앙은 우리 자녀와 후대에게 물려주어야 합니다.
한국교회에 대한 염려를 많이 합니다. 미래가 어둡다고 합니다. 교회마다 아이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때 우리가 기도하며 미래세대에 관심을 기울이고 복음을 전하며, 또한 교회 안에 있는 아이들에게 좋은 신앙의 본을 보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12절부터는 예수아를 이은 대제사장 요야김 시대의 제사장 가문의 족장들 명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귀향민 2세대에 활동한 제사장들입니다. 마치 100년 이상된 교회의 교회 역사를 기록한 책들을 보면 1대 목사님부터 2대 목사님 등 시대별로 누가 사역했으며 그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기록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22절부터는 제사장들의 계보가 계속 이어졌던 것처럼 레위인들의 계보 역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24절은 레위인들의 찬양했다는 것을 다시 강조하며, 25절은 “문지기로서 순서대로 문안의 곳간을 파수하였나니”라고 합니다. 성전 창고를 지키는 일을 하였습니다. 계속 반복하지만 크고 작음과 어렵고 쉽고를 떠나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주신 일은 무엇이 되었든 신실하게 감당합니다.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킵니다. 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공동체는 아름답게 세워지고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아름답게 드려집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신앙이 우선이라는 사실입니다. 성벽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앞두고 있는데, 건물이 세워진 것보다 신앙이 바로 세워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화려한 건물일지라도 다시 무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을 점검하고 무너진 곳이 있다면 다시 세워나갑시다.
2025.12.02 | 매일성경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였고”(1절)
예루살렘 성벽이 52일 만에 하나님의 은혜와 백성들의 수고로 완성된 후 하나의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7:4절 “그 성읍은 광대하고 그 주민은 적으며 가옥은 미처 건축하지 못하였음이니라” 예루살렘 성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성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도, 그리고 이전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서도 급선무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리고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지도자들은 누구인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1절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였고” 지도자들의 솔선수범하여 예루살렘에 거주합니다. 두 번째는, “그 남은 백성은 제비 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 거주하게”합니다. 7:5-73절까지 계보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서 1/10을 뽑아 예루살렘으로 이주하게 합니다. 제비뽑기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터전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주한다는 것이 쉽지 않지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갑니다. 이처럼 희생과 헌신을 통해서 공동체는 아름답게 세워집니다. 세 번째는, 2절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라고 하는데 예루살렘에 살기를 자원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위험하고 불안정한 상황이지만 이들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거룩한 도성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주를 자원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자원하는 사람들에 의해 든든하게 세워지고 확장되어 갑니다.
이어 3절부터는 예루살렘에 거주한 지방의 지도자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4절 “예루살렘에 거주한 자는 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 몇 명이라” 쉽게 말하면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가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이 두 지파가 남유다를 이루었고 포로에서 귀환할 때도 중심이 되었습니다. 먼저 4절 “유다 자손 중에는 베레스 자손 아다야”입니다. 그리고 5절의 ‘마아세야’입니다. 6절 “예루살렘에 거주한 베레스 자손은 모두 사백육십팔 명이니 다 용사였느니라” 유다 지파 베레스 자손은 468명으로 용사였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예루살렘을 군사적으로 보호하는 일을 감당하였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살루와 갑배, 살래 등으로 928명입니다. 그 가운데 9절 “시그리의 아들 요엘이 그들의 감독이 되었고 핫스누아의 아들 유다는 버금이 되어 성읍을 다스렸느니라”고 합니다. 이들이 예루살렘 성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그는 기도할 때에 감사하는 말씀을 인도하는 자가 되었고”(17절)
다음으로는 제사장들의 명단입니다. 10-11절 “제사장 중에는 요야립의 아들 여다야와 야긴이며 또 하나님의 전을 맡은 자 스라야이니”라고 합니다. 스라야는 “하나님의 성전을 맡은 자”입니다. 이처럼 성전에서 일하는 자들이 822명이요, 형제의 족장된 자가 242명, 형제의 큰 용사들은 128명입니다. 제사장들 가운데도 큰 용사가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계속 그랬듯 제사장들의 숫자는 많습니다.
제사장들에 이어 레위 사람이 소개됩니다. 16절 “또 레위 사람의 족장 삽브대와 요사밧이니 그들은 하나님의 전 바깥 일을 맡았고” 제사장이 성전의 안쪽 일을 맡았다면 레위인들은 성전의 바깥 일을 맡아 감당했습니다. 예를 들면 백성들의 헌물으로 모아 성전에 필요한 물건을 공급해 주는 일 등입니다. 그 가운데 17절 “ 맛다냐이니 그는 기도할 때에 감사하는 말씀을 인도하는 자가 되었고 형제 중에 박부갸가 버금이 되었으며” 이들은 성전 소속 성가대의 지휘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성 문지기들(19-20절), 느디님 사람들(21절), 노래하는 자들(22-24절) 순으로 소개됩니다. 그 중 22절의 ‘웃시’가 노래하는 자들의 감독으로 봉사합니다. 그는 23절 “이는 왕의 명령대로 노래하는 자들에게 날마다 할 일을 정해 주었기 때문이며”라고 합니다. 이렇게 보면 모두가 일의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필요한 부분에 사람들을 세워 감당하게 하였습니다.
25-36절까지는 예루살렘 주변에 사는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거주지역입니다. 어디에 살든지 자신이 머무는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삶이 복된 삶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공동체에 필요한 몇 가지 요소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는 부족한 부분을 지혜롭게 잘 채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루살렘에 부족한 인원을 제비뽑기 방식을 통해 채웠습니다. 지혜로운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백성들 역시 수고와 헌신으로 함께 했습니다. 두 번째는 지도자들의 모범입니다. 그동안 지도자들로 인해서 이스라엘 공동체가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제 예루살렘을 재건하는 일에 지도자들이 앞장섭니다. 세 번째는 백성들이 서로 비교하거나 경쟁하지 않고 각자 맡겨진 사명에 충실합니다. 제사장들은 성전 안 일을 하고 레위인들은 바깥 일을 맡습니다. 기도할 때 말씀을 인도하는 자도 있고, 매일 노래하는 자들에게 할 일을 정해주는 자도 있습니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주신 사명을 따라 묵묵히 감당합니다. 작은 일이라도 소중하게 감당합니다. 그런 수고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룹니다.
2025.12.01 | 매일성경
●“여호와의 모든 계명과 규례와 율례를 지켜 행하여”(29절)
8-10장에서 백성들은 성경을 읽고 회개하면서 과거 역사를 돌아봅니다. 결론은 9:32절 “우리 하나님이여 광대하시고 능하시고 두려우시며 언약과 인자하심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인자하심으로 지키셨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9:34절 “우리 왕들과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조상들이 주의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며 주의 명령과 주께서 그들에게 경계하신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언약에 신실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9:36절 하 “아름다운 소산을 누리게 하신 땅에서 우리가 종이 되었나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에서 행복을 누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종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회복해야 합니다. 그 방법이 9:38절 “우리가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우는 것입니다. 다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열심히 분주하게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처럼 지나온 역사를 돌아보며, 무엇이 문제인지를 발견하고 하나님과의 관계 점검하여 바른 방향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정한 회복의 출발점입니다.
그래서 10장에는 언약을 맺은 사람들과 구체적인 언약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27절은 언약맺은 사람들의 명단입니다. 많은 이름이 나오는데 구분해보면 1절은 “하가랴의 아들 총독 느헤미야”입니다. 최고지도자입니다. 그리고 2-8절까지는 제사장들입니다. 9-14절은 레위인들이고 14-27절까지는 백성의 우두머리들입니다. 한마디로 정치와 종교 지도자들이 먼저 언약을 맺고 있습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서를 보면 이스라엘 문제의 많은 부분이 지도자들의 문제였습니다. 이방인들과의 통혼 문제도 그렇고, 가난한 백성들을 힘겹게 해서 갈등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먼저 하나님과 언약을 세웁니다.
그러자 모든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맹세를 합니다. 내용이 29절 “맹세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종 모세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우리 주 여호와의 모든 계명과 규례와 율례를 지켜 행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순종하겠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짐을 지우기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새로운 신분, 영광스러운 신분을 가졌으니 그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하시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신10:13절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백성들의 행복을 위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하나님의 율법이 짐이 되고 부담이 되었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서 멀어지므로 발생한 일입니다. 결국 말씀보다는 세상의 방식을 따라 살아가다 지금의 현실을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신 것은 우리의 행복을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말씀을 기준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려 두지 아니하리라”(39절)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들은 구체적인 결단을 합니다. 첫째 이방인과 통혼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30절). 하나님만 섬기며 신앙의 순수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도 세상 속에 살지만, 세상에 물들지 않고 구별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두 번째는 안식일과 안식년을 지키겠다고 합니다(31-32절). 하나님 백성의 특징은 안식, 즉 쉼입니다. 세상의 특징은 쉼이 없습니다.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멈추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을 신뢰합니다. 그것이 안식일과 안식년을 지키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나만 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쉼을 누리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삼분의 일 세겔을 수납하여 성전 예배를 위해 사용하게 합니다. 백성들이 언약을 맺으며 이렇게 결단하는 것을 보면 그 전에는 이 일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쩌면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하겠지라는 마음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마음이 시간이 흐르면서 성전 예배를 무력화시켰고 그 결과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졌습니다. 이제는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내가, 우리가 감당하겠다고 합니다. 주인의식을 가지고 동참하고 있습니다.
네 번째는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립니다(35-37). 토지 소산의 맏물과 과목의 첫 열매를 드릴 뿐 아니라 맏아들들과 가축의 처음 난 것도 드립니다. 특이한 것은 맏아들을 드리는 겁니다. 이것은 출애굽 유월절에서 어린양의 피로 장자들이 생명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직접 맏아들을 성전에 바친 것이 아니고 민18:15-16절을 보면 다섯 세겔을 속전으로 지급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십일조입니다. 십일조는 기업이 없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하나님의 성전 봉사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방식으로 백성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제사장과 레위인의 육신적인 필요를 채우고, 반대로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백성들을 영적으로 채우는 일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서로 연결되어 있어 잘 세워주어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39절 하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려 두지 아니하리라” 하나님 중심, 하나님의 성전 중심의 삶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온전히 회복함이 중요합니다. 창조주되시며 인생과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외면하고 다른 것에서 행복의 의미를 찾는 것은 부질없는 일입니다. 먼저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런데 회복을 위한 목록 대부분이 물질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우선순위를 두고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실 것인데,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니 말씀의 기준대로 드리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모든 것의 주인되심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믿음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책임져주실 것을 신뢰하며 살아갑시다.
2025.11.28 | 매일성경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1절)
느헤미야 7장은 11장으로 연결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7장 내용은 성벽을 건축한 후 예루살렘 안에 거주하는 백성이 적어(4절)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백성들을 계보대로 등록하게 하였습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11장은 제비를 뽑아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이주시킵니다(11:1절). 그렇다면 8-10장은 7장과 11장 사이에 의도적으로 들어가 있는 부분입니다. 내용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회개하며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내용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 내용이 언제 있었던 사건인지에 대해 많은 의견들이 있습니다. 갑자기 에스라가 등장하기 때문에 2차 귀환 후 일어났던 일을 이곳에 기록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느헤미야의 흐름을 따라 성벽 재건 후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이렇게 보면 에스라와 느헤미야서를 통해 성경 저자가 강조하는 내용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스룹바벨 중심 성전 건축(스1-6장), 에스라 중심 신앙 건축(스7-10장), 느헤미야 중심 성벽 건축(느1-7장), 에스라 중심 신앙 건축과 언약 맺음(느8-10장)입니다. 이 순서에 따르면 외형적으로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내적으로 하나님과의 바른 신앙회복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성벽 건축을 마친 백성들이 일곱째 달에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와 낭독해주기를 요청합니다. 일곱째 달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한 해를 시작하는 달이며 여러 절기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율법을 낭독하는 초하루는 나팔절로 한 해를 시작하는 날입니다. 10일에는 속죄일이 있고, 15-21절은 초막절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한 해를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특이한 것은 이 말씀 운동이 지도자들의 주도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요청으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백성들의 마음에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습니다. 성벽 재건의 과정에서 내외부 적으로 많은 문제들이 있었는데 말씀으로 돌아가야 함을 절실히 깨달은 듯합니다.
수문 앞 광장에 많은 백성들이 모여 새벽부터 정오까지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한마디로 말씀 사경회, 부흥회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2절과 3절에서 두 번 반복되는 말이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입니다. 말씀이 낭독되는 것도 귀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말씀을 알아듣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 성경이 우리 각자에게 주어져있고 말씀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지만 중요한 것은 말씀을 듣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들을 귀를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면 안 되고 7절과 8절에서 또 두 번 강조하는 것이 “그 뜻을 해석하여 … 다 깨닫게 하니”입니다. 낭독하는 말씀을 바르게 해석해서 바르게 깨닫게 합니다. 이 과정이 필요했던 것은 구약 성경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는데 당시 백성들은 아람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긴 포로 생활 동안 히브리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백성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레위인들이 해석해서 바르게 깨닫게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르게 해석해서 바르게 깨닫는 것이 필요합니다.
더 나아가 12절과 13절에 반복되는 것은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입니다. 말씀을 계속해서 밝히 알아갑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순종하며 절기를 지킵니다. 그렇다면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알아 듣는 것이 필요하고 다음은 해석을 통한 깨달음이 필요하며 계속해서 밝히 알아가는 것이 중요함을 말해줍니다. 우리는 어느 과정에 머물러 있습니까?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10절)
많은 백성들이 모인 광장에 에스라가 나무 강단에 섭니다. 율법의 두루마리를 펼 때 모든 백성이 일어섭니다. 하나님과 말씀에 대한 경외의 표현입니다. 에스라가 하나님을 송축하자 백성들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으로 화답하며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이 광경을 상상해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지만 숨죽은 듯 조용합니다. 에스라의 입에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활짝 열고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받아들입니다. 마음에 새깁니다.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으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율법의 말씀을 들은 백성들은 눈물을 흘립니다. 말씀을 통해서 지난 온 시간들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이들의 마음속에 의문이 있었습니다. “왜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렇게 고난을 겪어야 하는가? 왜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파괴되고 하나님의 성전은 무너졌는가? 왜 이방 땅에서 긴 시간 포로 생활을 해야 했는가?” 그런데 말씀을 통해 이해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돌아와 성전과 성벽을 건축한 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의 눈물과 감사의 눈물이 함께 흐릅니다. 어쩌면 광장이 울음바다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그러자 지도자들이 권면합니다. 9절 하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고 합니다. 이제 과거의 슬픔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기쁨으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미래로 나아가자고 합니다. 그래서 10절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그렇습니다. 성도의 진정한 힘은 하나님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충만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모든 백성이 크게 즐거워합니다.
말씀을 밝히 깨달으니 일곱째 달에 초막절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절기를 지키되 형식적 습관적으로 지켜서는 안 되고 온전하게 지켜야 함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나뭇가지를 가져다가 초막을 만들고 절기를 지킵니다. 초막절은 과거 출애굽 후 광야 생활 동안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이전에도 분명 초막절을 지켰을 것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절기의 의미를 깨닫고 온전하게 지킴으로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벅찬 감격을 누립니다. 이것을 17절 “초막을 짓고 그 안에서 거하니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 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한 일이 없었으므로 이에 크게 기뻐하며”라고 표현합니다. 은혜와 감동의 절기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을 밝히 알고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입니다.
우리에게는 이처럼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있는지 돌아봅니다. 말씀으로 인한 감격이 있는지 돌아봅니다. 습관과 의무가 아닌 말씀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순종하므로 큰 기쁨과 힘을 얻는 삶이 됩시다.
2025.11.27 | 매일성경
●“내가 처음으로 돌아온 자의 계보를 얻었는데”(5절)
예루살렘 성벽이 52일 만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완성됩니다. 그런데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4절 “그 성읍은 광대하고 그 주민은 적으며 가옥은 미처 건축하지 못하였음이니라” 성읍에 거주하는 사람이 많지 않고 집들도 무너져있습니다. 성벽이 온전해도 사람이 없다면 이전의 영광을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을 성안으로 이주시켜야 할까요? 민감한 문제입니다. 이미 삶의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합당한 이유 없이 이주시킨다면 반발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느헤미야는 기도의 사람입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했을 것입니다. 그러자 5절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동하사” 하나님께서 감동하십니다. 지혜를 주십니다. 이 문제는 공평하게 모든 백성이 함께 짊어지고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이를 위해 느헤미야는 계보대로 등록하게 합니다. 그 과정에서 5절 하 “내가 처음으로 돌아온 자의 계보를 얻었는데”라고 합니다. 1차 귀환자들의 계보를 찾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은 이미 에스라 2장에 나왔던 내용입니다. 같은 내용을 두 번 반복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가 원래 하나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면 저자는 앞부분과 뒷부분에 긴 계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계보 뒤에 8-10장까지는 말씀 운동을 통한 회개와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내용으로 이어집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저자는 이들이 제2의 출애굽 백성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새롭게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야 할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다시 계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스라 2장을 묵상하면서 이미 살펴본 내용이지만 간단하게 계보를 정리하겠습니다. 7절에는 스룹바벨과 예수아를 중심으로 한 1차 귀환 지도자 12명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동일한 내용인 스2:2에는 11명의 이름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비교해보면 ‘나하마니’가 빠져 있습니다. 필사자의 실수로 빠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12명의 지도자는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합니다. 이것 역시 바벨론에서 놓임을 받고 귀환한 것을 제2의 출애굽으로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라”(7절)
8-24절까지는 가문별 숫자입니다. 그래서 “바로스 자손”, “스바댜 자손”으로 이어집니다. 25-38절까지는 지역별 숫자입니다. “기브온 사람”, “베들레헴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39-42절은 제사장들의 숫자입니다. 상당히 많은 제사장들이 돌아왔습니다. 이에 비해 43-45절에 기록된 레위 사람의 숫자는 적습니다. 이런 차이는 제사장들은 백성들의 인정과 존경을 받는 사역을 합니다. 반면 레위인들은 제사장을 도와 힘든 일을 감당해야 하며 이름없이 빛도 없이 섬겨야 합니다. 그래서 많은 레위인들이 고국으로 돌아와 하나님을 섬기며 성전에서 봉사하는 것보다 이방 땅에 남기를 선택했는지 모르겠습니다. 2차 귀환 때는 레위인이 한 사람도 없어 다시 모집해서 돌아오는 일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편하면서도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일을 한다면, 누군가는 다른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궂은일을 하기도 합니다. 교회 공동체에 다 필요한 사역들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의 기준으로 좋고 나쁨을 구별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를 따라 기쁨으로 섬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더불어 서로 돌아보며 힘들 일들을 함께 짊어져주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46절부터는 느디님 사람들 명단입니다. 이들은 성전에서 허드렛일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도 귀환해서 봉사합니다. 61절부터는 이스라엘에 속했는지 알 수 없는 자들, 계보를 찾을 수 없는 자들의 명단입니다. 이스라엘 신앙의 순수성이 중요하기에 이들을 분류합니다. 특히 제사장들 중에 계보를 확인할 수 없는 자들은 64절 “그들을 부정하게 여겨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지 못하게”합니다. 공동체의 거룩함을 위해서 단호하게 조치합니다. 이렇게 돌아온 사람들의 숫자는 66절 “온 회중의 합계는 사만 이천삼백육십 명”입니다.
70-72절까지는 족장들과 총독, 그리고 백성들이 성전 건축을 위해 드린 예물에 관한 내용입니다. 한마디로 많은 재물을 드렸습니다. 1차로 귀환한 백성들의 상황을 보면 아직 제대로 정착하지 못해서 안정적이지 않고 미래도 불안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먼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헌신하며 마음을 모읍니다. 하나님께 우선순위를 둡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셨을 것입니다.
순간순간 해결해야 하고, 선택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 감동하심으로 지혜롭게 감당하도록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