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13:1-14:1절/여호와를 의지하였음이라(25.09.30)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5절)

​르호보암에 이어 아들 아비야가 남유다 왕이 됩니다. 3년을 다스렸다고 하는데 2절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미가야요 기브아 사람 우리엘의 딸이더라”고 합니다. 그런데 11:21-22절에서는 아비야의 어머니를 “압살롬의 딸 마아가”라고 합니다. 히브리어에서는 “아들”을 “손자”로, “딸”을 “손녀”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압살롬에게는 다말이라는 딸이 있는데(삼하14:27절), 다말이 우리엘과 결혼해서 낳은 딸이 아비야의 어머니인 미가야(마아가)입니다.

오늘 본문은 아비야가 했던 일 한 가지가 기록되어 있는데, 북이스라엘 여로보암과의 전쟁입니다. 먼저 아비야가 전쟁을 시작한 것 같습니다. 군대의 숫자는 남유다가 40만명, 북이스라엘의 80만명입니다. 숫자로 보면 이미 승리가 정해진 듯 보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강조점은 전쟁을 앞두고 아비야가 산에 올라 북이스라엘과 여로보암을 향해 했던 연설입니다. 먼저 ‘소금언약’을 거론합니다. ‘소금언약’은 파기할 수 없는 영원한 언약입니다. 언약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다윗과 그의 후손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6절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신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일어나 자기 주를 배반”했다고 합니다. 이런 표현은 여로보암이 반역자라는 사실을 부각시킵니다. 또한 반역자 여로보암과 함께 한 자들이 난봉꾼과 잡류들이라고 조롱합니다.

그런데 이런 아비야의 이야기는 성경에 기록된 내용과 다릅니다. 여로보암을 북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솔로몬의 우상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 이루어진 일입니다. 문제는 여로보암이 자신을 왕으로 세우시면서 주신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겁니다. 왕상11:38절 “네가 만일 내가 명령한 모든 일에 순종하고 내 길로 행하며 내 눈에 합당한 일을 하며 내 종 다윗이 행함같이 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다윗을 위하여 세운 것 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다윗과 같은 견고한 집을 세워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은 왕이 되자마자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숭배를 합니다.

왜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이 있음에도 어기고 통치를 시작하자마자 금송아지를 만들었을까요? 이유는, 절기가 되면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이 있는 남유다 예루살렘으로 가서 예배를 드리고 돌아옵니다. 왕으로서 불안한 마음이 듭니다. 혹시나 백성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어떨까?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합니다. 그래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세우고 그곳에서 제사하도록 합니다. 그러니 온전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이들은 남유다 예루살렘으로 내려옵니다. 그러자 아무나 돈만 내면 제사장으로 임명합니다. 이렇게 해서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지만 잘못된 출발을 하게 되었고 이것이 북이스라엘 역사 내내 문제가 됩니다.

여로보암은 문제가 있고 불안할 때 말씀에 순종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맡기지 않고 내 생각과 세상의 방식을 따라 행동했습니다. 그 결과가 오늘과 같은 실패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음이라”(18절)

​반면 아비야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10절 “우리에게는 여호와께서 우리 하나님이 되시니 우리가 그를 배반하지 아니하였고…” 그러면서 하나님의 기준으로 세워진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하는지를 자세히 설명합니다. 매일 드리는 번제와 진설병, 등잔대 분향 등을 통해 여로보암처럼 인간의 생각과 편리를 따라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기준과 말씀에 순종합니다. 12절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사 우리의 머리가 되시고 … 하나님 여호와와 싸우지 말라 너희가 형통하지 못하리라”고 합니다.

이 부분이 역대기를 읽는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 모든 것이 무너진 상황에서 무엇이 중요하며, 어떻게 시작을 해야하는지를 말씀합니다. 불안하고 문제가 가득한 현실에서 사람의 생각과 편리를 따라 행동하면 안 됩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은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기준과 방법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어떤 일보다 예배를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중요합니다.

전쟁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13절을 보면 남유다는 군사의 숫자로도, 작전에서도 패배할 수 밖에 없습니다. 북이스라엘 군대가 복병을 보내 앞뒤로 포위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위기 속에서 유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제사장들은 나팔을 붑니다. 그러자 15절 “하나님이 여로보암과 온 이스라엘을 아비야와 유다 앞에서 치시니”, 16절 “하나님이 그들의 손에 넘기셨으므로”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전쟁에 개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치시고 넘기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어제 본문 12:5절 하 “너희가 나를 버렸으므로 나도 너희를 버려 시삭의 손에 넘겼노라”는 말씀을 생각하게 됩니다. 르호보암의 교만과 우상숭배를 하나님은 애굽왕 시삭의 손에 넘겨 깨닫게 하십니다. 마찬가지로 북이스라엘 여로보암의 우상숭배를 남유다 아비야의 군대 손에 넘겨 깨닫게 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 아닌 우상을 숭배하는 일은 필패의 길입니다.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반면 18절 하 “그들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음이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을 의지할 때 승리합니다.

이 전쟁의 결과 여로보암은 강성하지 못하고 결국 죽습니다. 반면 아비야는 점점 강성합니다. 그리고 아들 아사가 대신하여 왕이 되며 그 땅에 10년 동안 평안이 있었습니다.

불안하고 문제가 있을 때 내 생각과 감정, 세상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결과를 책임져 주실 것을 신뢰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과 함께 하며 의지할 때 승리를 주십니다.

역대하12:1-16절/스스로 겸비하여(25.09.29)

●“그들이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므로”(2절)

​솔로몬의 뒤를 이어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됩니다. 이때 솔로몬의 우상숭배와 잘못된 통치로 인해 나라가 둘로 나누어집니다. 남유다는 르호보암이,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이 왕이 됩니다. 어려운 시국에서 르호보암은 견고한 성읍들을 건축하면서 나라를 강하게 했습니다. 또한 북이스라엘 여로보암이 우상을 숭배하자 그곳에 살던 하나님을 섬기려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백성들이 남유다 예루살렘으로 와서 하나님을 섬깁니다. 그 결과 11:17절은 “그러므로 삼 년 동안 유다 나라를 도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강성하게 하였으니 이는 무리가 삼 년 동안을 다윗과 솔로몬의 길로 행하였음이더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3년 동안은 르호보암이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을 경배하며 다윗과 솔로몬의 길을 걸었고 이때 강성하였지만 그 이후 하나님에게서 떠났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 1절은 “르호보암의 나라가 견고하고 세력이 강해지매 그가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니 온 이스라엘이 본받은지라”고 합니다. 위기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며 순종했을 때 하나님께서 강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나라가 견고하고 강해지니 르호보암에게 교만이 찾아오고 하나님의 율법을 버립니다. 르호보암의 죄를 왕상14:22-23절은 “유다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의 조상들이 행한 모든 일보다 뛰어나게 하여 그 범한 죄로 여호와를 노엽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도 산 위에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산당과 우상과 아세라 상을 세웠음이라”고 합니다. 왕의 범죄를 온 이스라엘이 본받습니다.

르호보암은 견고하고 세력이 강할 때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보다 형통할 때 위기가 찾아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을 자신이 얻은 것으로 착각하고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은혜와 감사를 잊고 욕심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반복되는 단어가 ‘겸비’입니다(6,7,12). 하나님은 교만한 르호보암과 유다에 위기를 주셔서 겸비하게 하십니다. 겸손할 때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신앙의 가장 큰 적은 바로 교만입니다. 교만의 문제는 자신이 교만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처럼 어떤 심각한 문제를 만난 후에야 교만했다는 것을 깨닫고 겸손해지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매일 말씀의 거울 앞에 우리 자신을 비춰보면서 하나님 앞에 겸비해야 하겠습니다.

●“여호와를 구하는 마음을 굳게 하지 아니함이었더라”(14절)

​범죄한 유다를 하나님은 르호보암 왕 5년 되는 해에 애굽 왕 시삭을 통해 공격하게 하십니다. 그러자 그렇게 견고하게 세웠던 성읍들을 한 순간에 빼앗기고 맙니다. 하나님은 스마야 선지자를 통해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알려주십니다. 5절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버렸으므로 나도 너희를 버려 시삭의 손에 넘겼노라” 그렇습니다. 유다 백성이 하나님을 먼저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이들을 버리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버리심은 완전한 외면이 아니고 깨닫고 돌이키도록 하시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이때 왕과 방백들의 고백이 놀랍습니다. 6절 하 “여호와는 의로우시다”라고 고백하며 겸비합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7절 “내가 멸하지 아니하고 저희를 조금 구원하여”라고 하시는데, 의미가 애굽의 공격을 완전히 물리쳐 주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애굽의 공격을 받게 될 것이고 가까스로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왜 겸비한 백성들을 완전히 구원해 주지 않으시고 이렇게 가까스로 구원을 얻게 하실까요? 8절에 이유가 나옵니다. “그러나 그들이 시삭의 종이 되어 나를 섬기는 것과 세상 나라들을 섬기는 것이 어떠한지 알게 되리라”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섬기는 특권과 은혜를 주셨지만 알지 못하고 감사하지 않을 때 그것을 잠시 빼앗으시므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을 의지할 때 주어지는 결과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동안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은혜와 복이었음을 알게 하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이 포로에서 돌아와 역대기를 읽는 백성들에게 어떻게 들렸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고통의 이유를 묻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선포합니다. 이유없이 하나님께서 포로되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먼저 하나님을 우상숭배로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겸비하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애굽 왕 시삭의 공격으로 솔로몬이 만든 영화로움의 표시였던 금방패를 다 빼앗깁니다. 르호보암은 놋 방패를 만들어 경호하게 합니다. 찬란했던 영광이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지 않으면 사라집니다, 순식간입니다.

마지막으로 13절부터는 르호보암의 통치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13절과 14절이 대조를 이룹니다. 13절 “르호보암 왕은 예루살렘에서 스스로 세력을 굳게 하여 다스리니라” 그런데 14절은 “르호보암이 악을 행하였으니 이는 그가 여호와를 구하는 마음을 굳게 하지 아니함이었더라”고 합니다. 르호보암의 문제는 “스스로 세력을 굳게” 하였지만, “하나님을 구하는 마음을 굳게 하지 않은” 결과가 오늘 본문과 같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구하는 마음을 굳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을 잠깐, 몇 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하는 것이 복된 신앙, 복된 인생의 길입니다. 이를 위해 형통할 때도 교만하지 않고 겸손해야 합니다. 시련과 장애물 앞에서도 주저앉지 않고 인내해야 합니다.

역대하9:13-31절/지혜와 영광(25.09.26)

●“왕이 또 상아로 큰 보좌를 만들고”(17절)

​1장부터 시작되었던 솔로몬 왕에 대한 이야기가 9장에서 마무리됩니다. 솔로몬은 통치를 시작하면서 일천 마리 번제를 드리고 하나님께 지혜와 지식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잘 재판해서 정의와 공의의 나라를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 솔로몬에게 하나님은 1:12절 “내가 네게 지혜와 지식을 주고 부와 재물과 영광도 주리니 네 전의 왕들도 이런 일이 없었거니와 네 후에도 이런 일이 없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그 내용이 오늘 본문입니다.

13-21절까지는 솔로몬의 부와 재물에 관한 내용입니다. 한 해 세입금이 금 666달란트였습니다. 20톤의 양이라고 합니다. 그것만 아니고 무역을 통한 세금, 솔로몬과 무역하며 도움을 받는 나라들에서 보낸 금이 많았습니다. 금이 많으니 그것으로 큰 방패 200개의 작은 방패 300개를 만듭니다. 이런 방패는 전쟁용이 아닌 왕의 행차나 국가 예식에서 과시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어 솔로몬이 앉는 왕의 보좌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상아로 만들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데 순금으로 입혔습니다. 보좌 양쪽에 팔걸이가 있고 보좌로 올라가는데 여섯 층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팔걸이 양 옆에 사자 형상이 하나씩 놓여있고, 올라가는 여섯 층계 양 옆에도 한 마리씩해서 12마리의 사자 형상이 있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강조합니다. 19절 하 “어떤 나라에도 이같이 만든 것이 없었더라” 솔로몬의 영광이 비교불가입니다.

솔로몬이 먹고 마시는 그릇도 다 금입니다. 이처럼 금이 넘쳐나 금을 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21절 보면 무역을 통해 다시스에서 들어오는 품목이 기록되어 있는데 “다시스의 금과 은과 상아와 원숭이와 공작”입니다. “원숭이와 공작”이 들어 있다는 것이 특이합니다. 풍요를 누리다보니 애완용으로 기르며 보기 위해서 들여온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 모든 것들이 솔로몬 시대의 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읽다 보면 “이것은 너무 사치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자랑할 일인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때 우리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생각과 기준을 따라 해석하지 말고, 저자의 의도를 생각해야 합니다. 역대기를 읽은 백성들은 솔로몬이 완공한 영광스러운 성전과 솔로몬 시대의 부가 사라진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라가 멸망하여 포로생활에서 돌아왔습니다. 힘들고 소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는 것은 메시아를 통한 회복과 소망입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가 예수님이시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과 회복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백성들의 입장에서 볼 때 메시아를 통한 회복은 가장 선명한 그림은, 바로 솔로몬이 누린 영광이요 그로 인해 열방 위에 뛰어난 나라가 된 것입니다. 저자는 그 부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 우리는 약속하신 메시아 예수님을 통해 성취된 영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습니다.

●“솔로몬 왕의 재산과 지혜가 천하의 모든 왕들보다 큰지라”(22절)

​22-28절은 솔로몬의 명성이 열왕 위에 뛰어났음을 강조합니다. 많은 왕들이 스바 여왕처럼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를 원했습니다. 오면서 예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특히 24절 하 “해마다 정한 수가 있었더라”고 합니다. 표준새번역은 “해마다 이런 사람들의 방문이 그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26절은 솔로몬이 다스린 지역을 열거하는데, 유브라데 강에서부터 블레셋과 애굽 지경까지 모든 왕을 다스렸습니다. 이것은 영토을 넓혔다기 보다는 솔로몬의 강력한 통치에 이들이 복종하고 조공을 바쳤다는 의미입니다. 결과적으로 27절은 “왕이 예루살렘에서 은을 돌 같이 흔하게 하고 백향목을 평지의 뽕나무 같이 많게 하였더라”고 하는데 이 구절은 1:15절에서 나왔던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저자는 솔로몬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이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강조점은 솔로몬의 지혜, 그로 인한 부와 영광입니다.

솔로몬은 40년을 통치하고 세상을 떠납니다. 아들 르호보암이 대신하여 왕이 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균형을 위해 열왕기서에서 말하는 솔로몬의 마지막을 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왕상11장에 나옵니다. 솔로몬은 많은 이방 여인을 사랑했습니다. 나라의 안정과 부강을 위해 정략결혼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인들이 들어오면서 자신들이 섬기던 우상들을 가져왔고, 우상을 위한 산당을 지었으며 분향하고 제사하였습니다. 이스라엘에 온갖 우상숭배가 가득하게 된 것입니다. 왕상11:9절은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고 합니다. 그 결과 나라가 둘로 나누어지는데, 신실했던 다윗을 생각해서 그의 아들 솔로몬 때에는 나뉘지 않고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통치할 때 나라가 나뉘어집니다. 열왕기 저자는 솔로몬의 마지막을 긍정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역대기는 우상숭배의 결과로 나라가 멸망하여 대가를 치르고 돌아온 시점입니다. 그래서 회복과 소망에 초점을 맞추고 솔로몬의 지혜와 부, 영광을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해 본다면,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며, 말씀을 묵상하므로 얻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영적인 풍요를 누리며 폭풍 가운데서도 삶의 평안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또한 그런 지혜의 삶을 통해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삶이 됩시다.

역대하8:17-9:12절/세상을 감동시킨 지혜(25.09.25)

●“그들이 솔로몬의 종들과 함께 오빌에 이르러”(18절)

​오늘 본문을 8장 마지막 두 절과 9장을 연결하여 정한 것은 이스라엘과 솔로몬이 이방 여러 나라들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한마디로 열방이 이스라엘과 협력하고 솔로몬의 뛰어남을 인정합니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스라엘이 열방 위에 뛰어난 민족으로 열방의 빛이 되고 있습니다.

먼저 솔로몬이 금을 구하기 위해 에돔 땅인 에시온게벨과 엘롯 항구로 갑니다. 이때 두로 왕 후람이 배와 종들을 보내 솔로몬이 금을 구하는 일을 돕습니다. 이렇게 구한 금이 450달란트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9:9절에서 스바 여왕이 솔로몬에게 선물한 금 120달란트와 연결되면서, 9:10-11절은 오빌에서 금을 실어 오면서 백단목을 가져왔고, 그 백단목으로 성전과 왕궁의 층대 그리고 찬양하는 자들을 위한 악기를 만들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스바 여왕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스바는 지금의 예멘으로 보석과 금 무역으로 유명했으며 당시 강대국이었습니다.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이스라엘을 찾아옵니다. 이스라엘과 솔로몬의 소문이 세상 곳곳에 펴져 나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스바 여왕의 관심은 솔로몬의 지혜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질문으로 시험합니다. 아마 스바 여왕도 나름 지혜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의 지혜가 얼마나 뛰어나기에 소문이 났는지 시험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솔로몬을 만난 여왕은 1절 하 “그가 솔로몬에게 나아와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말하매” 모든 어려운 질문으로 시험합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다 대답합니다. 몰라서 대답하지 못한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지식으로 인한 것입니다.

그러자 이제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와 더불어 왕궁과 상의 음식물, 신하들의 좌석, 신하들이 일하는 모습, 입은 제복을 보고 놀랍니다. 특히 4절 하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는 층계를 보고 정신이 황홀하여”라고 하는데 이 부분을 표준새번역은 “주님의 성전에서 드리는 번제물을 보고 나서 넋을 잃었다”고 번역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제 본문에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를 위해 모세의 명령을 따라, 다윗의 규례를 따라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직무를 나누어 감당하게 했습니다. 그 결과 8:15절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 무슨 일에든지 왕이 명령한 바를 전혀 어기지 아니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작은 부분 하나하나가 질서있고 아름답게 이루어집니다. 음식이나 제복 등 작은 것 하나 소홀함이 없습니다. 그것을 보고 스바 여왕이 “정신이 황홀했다”고 합니다. 감동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솔로몬의 지혜로 인한 것입니다.

여왕이 큰 왕궁에도 놀랐지만 대부분은 작고 사소한 것들에 놀랐다는 것에 주목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작고 사소한 것이 중요합니다. 영화도 디테일한 장면들이 놀라움과 감동을 줍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습니다. 작고 사소한 것들이 모여 결국 아름다운 우리 삶이 됩니다.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옵니다. 하루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작은 습관들이 우리 삶을 복되게 합니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8절)

​감동한 여왕은 먼저 솔로몬을 칭송합니다. 솔로몬의 지혜에 관한 소문을 듣고 믿지 않았는데 사실이었다는 것과 경험하고 보니 자신이 들은 소문은 실제 지혜에 절반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고 극찬을 합니다. 또한 여왕의 눈에 이런 지혜로운 솔로몬 곁에 있는 백성들과 신하들이 가장 복된 사람들입니다. 부러운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솔로몬의 지혜를 곁에서 듣고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왕의 찬양은 하나님을 향합니다. 8절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하나님이 당신을 기뻐하시고 그 자리에 올리사 … 당신의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사 영원히 견고하게 하시려고 당신을 세워 그들의 왕으로 삼아 정의와 공의를 행하게 하셨도다”고 합니다. 이 찬양은 대하2:11-12절에서 두로왕 후람이 성전 건축 돕는 일을 허락하면서 하나님과 솔로몬을 찬양했던 내용과 비슷합니다. 이방의 지도자들이 솔로몬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 내용을 읽고 있는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의 마음이 어떠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이렇게 영화로웠던 이스라엘, 열방의 빛과 소망이 되었던 이스라엘이 멸망했습니다. 이방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대하7:19-22절에서 하나님이 경고하신 것처럼 율례와 명령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경배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그 땅에서 뿌리가 뽑히고 성전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암담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8절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사 영원히 견고하게 하시려고”라고 스바 여왕의 입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을 사랑하십니다. 영원히 견고하게 하십니다.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절망하지 말고 하나님으로 인한 소망을 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의 함께 하심,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 하나님의 지혜가 있는 사람은 다른 이들에게 보여지고 들려집니다. 삶이 안정되고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없어서 안정된 것이 아니라 폭풍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소망을 붙잡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대하는 방식이 세상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삶의 작은 부분들이 질서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세상이 우리를 찾아와 그 이유를 물을 것입니다. 이 과정이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역대하8:1-16절/모세와 다윗의 명령을 따라(25.09.24)

●“건축하고자 하던 것을 다 건축하니라”(6절)

​솔로몬이 성전과 궁궐을 20년 동안 건축하기를 마쳤다고 합니다(1절). 그리고 오늘 본문을 매일성경은 16절까지로 정했는데, 끝 절인 16절을 보면 “솔로몬이 여호와의 전의 기초를 쌓던 날부터 준공하기까지 모든 것을 완비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전 공사가 결점 없이 끝나니라”고 합니다. 사용된 단어들이 “기초부터 준공까지”, “모든 것을 완비”, “공사가 결점 없이 끝나니라”고 합니다. 저자는 성전 완공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여기뿐만 아니라 5:1절과 7:11절에서도 성전 건축을 마쳤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은 성전 건축 이후 하나님께서 어떤 은혜를 베풀어 주셨고, 솔로몬은 무엇을 중심으로 성전과 제사를 정비해 나갔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전 건축 이후 2-6절까지 반복되는 단어는 ‘건축’입니다. 많은 건축 사업이 진행되었습니다. 먼저는 2절에 후람이 되돌려 준 성읍을 건축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게 하였습니다. 이 부분은 왕상 9장을 보면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마치고 큰 도움을 준 두로 왕 후람에게 갈릴리 성읍 20곳을 선물로 줍니다. 그런데 그곳이 사람이 살지 않는 척박한 곳이어서 후람이 마음에 들지 않아 불평을 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오늘 본문을 보면 다시 되돌려 준 듯합니다. 솔로몬은 그곳에 건축 사업을 통해 사람들이 거주하는 새로운 도시를 만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 국고성을 건축합니다. 국고성은 전쟁을 비롯한 비상 상황을 대비해서 양식과 무기를 저장해 놓는 성입니다. 6절에는 국고성과 병거성, 마병의 성들을 건축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건축 사업의 결론이 6절 하 “솔로몬이 또 예루살렘과 레바논과 그가 다스리는 온 땅에 건축하고자 하던 것을 다 건축하니라” 솔로몬은 건축을 통해 견고하고 부강한 나라를 만들어 갑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성전 건축을 마치고 이루어졌습니다. 저자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실 건축에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저자의 강조점처럼 부강함의 표시이기도 하지만, 많은 건축 사업은 과도한 세금을 거두어야 하고 많은 노동력이 필요합니다. 나라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 사후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을 때 이런 백성들이 불만이 드러나서 결국 나라가 둘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역대기의 저자는 거기까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성전 건축과 그로 인해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에 초점을 맞춥니다.

많은 건축 사업이 어떤 사람들의 노동력으로 이루어졌을까요? 가나안 땅에 들어가 멸하지 않은 족속들이 노예가 되어 역군으로 일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이스라엘 자손은 솔로몬이 노예로 삼아 일을 시키지 아니하였으니”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지만 이스라엘 자손은 노예로 삼지 않습니다. 지휘관으로 세워 노예들을 다스리게 합니다. 그 이유는 레25:39-46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노예로 삼지 말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은 솔로몬이 하나님의 기준을 따라 행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여호와의 전 공사가 결점 없이 끝나니라”(16절)

​이것만이 아닙니다. 11절을 보면 솔로몬이 바로의 딸을 아내로 삼았다고 합니다. 이것 역시 문제입니다. 나라의 안정을 위해 정략결혼을 한 것입니다. 바로의 딸만이 아닙니다. 많은 주변 이방 나라 공주들이 솔로몬과 결혼동맹을 맺었습니다. 이들이 들어오면서 우상을 가지고 왔고, 이것이 이스라엘에 우상숭배의 원인이 되고 솔로몬이 노년에 하나님을 떠나는 이유가 됩니다. 하지만 역대기 저자의 초점은 솔로몬이 바로의 딸이 거할 궁을 다윗 왕궁이 아닌 다른 곳에 지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유는 다윗 왕궁이 있는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성전이 있고 그곳에 하나님의 궤가 있기 때문입니다. 11절 하 “여호와의 궤가 이른 곳은 다 거룩함이니라” 그래서 이방 여인을 궤가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 거주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이 훼손되지 않도록 했습니다.

마지막 내용은 제사 제도를 정비하고 확립합니다. 그런데 반복해서 강조하는 기준이 13절 “모세의 명령을 따라”, 14절 “그의 아버지 다윗의 규례를 따라”,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전에 이렇게 명령하였음이라” 그렇습니다. 솔로몬이 자신의 생각대로 하지 않고 모세의 명령을 따라 그리고 다윗의 규례를 따라 행합니다.

그래서 번제를 안식일과 초하루, 세 번의 절기에 드립니다. 제사장들은 반열을 졍하여 섬기게 하였고, 특히 레위인들이 감당할 일을 구분하여 정해줍니다. 세가지인데 찬송하는 일, 제사장을 수종드는 일, 그리고 문을 지키는 일입니다. 그 결과 15절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국고 일에든지 무슨 일에든지 왕이 명령한 바를 전혀 어기지 아니하였더라” 이렇게 완공된 성전에서 말씀의 기준을 따라 질서있는 예배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런 이스라엘 위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역대기 저자의 관심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 황량한 예루살렘에 작은 성전을 짓고 암담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백성들에게, 이들에 회복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강조합니다. 무엇보다 성전을 잘 세우는 겁니다. 또한 성전에서 하나님의 말씀, 기준을 따라 예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것이 중심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모든 부분이 회복되고 살아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성전된 우리에게 무너진 부분은 없는지 돌아봅니다. 특히 예배를 잘 회복하고 예배가 우리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회복의 출발점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우리의 생각과 경험, 지식을 중심으로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질서있게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역대하7:1-22절/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하니(25.09.23)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1절)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한 후 언약궤를 지성소로 옮겼을 때 5:13-14절을 보면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했습니다. 그 후 7가지의 기도 제목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기도가 마치자 1절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릅니다. 마치 모세가 성막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마쳤을 때 레9:24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제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와 같습니다. 본문 1-3절은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했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고, 하나님의 불이 내려 제물을 태우니 백성들은 거룩한 두려움으로 엎드려 경배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심이 영원하심을 찬양하며 감사합니다.

솔로몬 성전이 아무리 화려해도 하나님의 임재가 없고 하나님의 불이 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의 건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크기와 화려함에 상관없이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하나님의 불이 있을 때 성전으로서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이 사실은 역대기를 읽는 백성들에게 중요한 요소였을 것입니다. 포로에서 돌아와 황폐한 예루살렘에 솔로몬 성전에 비교되지 않는 작은 성전을 건축하였습니다. 과거 솔로몬 성전의 크기와 화려함을 듣고 알고 있던 자들에게는 실망감이 있습니다. 과연 이곳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하나님의 불입니다.

이 시대 성전 된 우리가 무엇을 중심으로 신앙의 삶을 살아가야 할까요? 외적인 모습이 아닙니다. 신앙의 기간이나 어떤 지위가 아닙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불인 성령의 충만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고 엎드려 경배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솔로몬과 모든 백성들이 성전 봉헌식 거행합니다. 드린 제물이 5절 “소가 이만 이천 마리요 양이 십이만 마리라”고 합니다. 1장에서 일천 마리 번제를 드렸을 때도 많은 제물이라고 했는데,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제물을 드립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많은 제물입니다. 제물이 너무 많아 솔로몬이 만든 번제단에서 다 태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7절은 성전 앞 뜰을 거룩하게 하고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드렸다고 합니다. 또한 레위인들이 악기를 불면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찬양하며 기쁨의 제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이어 제사의 기간이 나오는데, 먼저 7일 동안 성전 봉헌식을 거행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고 9절을 보면 다시 7일을 절기를 지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7월15-22일이 초막절 절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을 하는 동안 초막에서 머물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것을 기념하는 절기이면서 동시에 추수를 마치고 감사하는 절기로 가장 성대한 절기라고 했습니다. 초막절 전 7일 동안 성전 봉헌식을 거행하고 바로 이어 다시 7일 동안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완공되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백성들이 기쁨으로 예배한 것입니다. 그런 후 7월 23일에 집으로 돌아가는데 10절 하 “백성이 여호와께서 다윗과 솔로몬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은혜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마음에 즐거워하였더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합니다.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16절)

​11절은 성전건축과 더불어 왕궁 건축을 마쳤다고 합니다. 열왕기상은 구체적으로 이 둘을 나누어서 설명하는데 역대기는 하나로 설명하면서 핵심은 “다 형통하게 이루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솔로몬이 드린 기도를 요약해서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14절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먼저 악한 길에서 떠나야 합니다. 스스고 낮추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해야만 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셔서 들으십니다. 16절 하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을 고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와 우리 가정, 교회, 나라와 민족을 고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먼저 악한 길에서 떠나고 우리의 얼굴을 다른 곳으로 향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로만 향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만을 갈망하며 부르짖어야 합니다. 반드시 응답하시고 고쳐주십니다.

본문을 묵상하다 보니 여기서 마무리가 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으로. 그런데 하나님은 17-22절의 말씀을 하십니다. 솔로몬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복된 삶을 살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부분이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17절 “내가 네게 명령한 모든 것을 행하여 내 율례와 법규를 지키면” 나라와 왕위가 견고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19절 “내가 너희 앞에 둔 내 율례와 명령을 버리고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들을 경배하면” 주신 땅에서 뿌리를 뽑아내고 비웃음 거리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성경을 읽는 백성들은 이 일을 직접 경험한 자들입니다. 솔로몬이 성전 봉헌식을 할 때는 설마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본문을 읽는 백성들에게 이 말씀은 뼈저리게 체험한 말씀입니다. 그대로 실현된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돌아온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닌 바로 오늘 본문처럼 하나님의 임재 속에 살아가며 하나님을 엎드려 경배하고 특히 하나님의 율례와 명령을 따라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러면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소망의 미래를 열어주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를 돌아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임재와 불이 있는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을 갈망하고 다른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의 임재, 성령의 충만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고쳐주시길 기도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